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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키도의 전신, 대동류 합기유술의 창시자 다케다 소가쿠선생의 아들로서 대동류 합기유술 종가를 이끌었던 다케다 도키무네의 인터뷰입니다. 출전은 [AIKIDO FAQ]입니다.
(인터뷰의 번역문을 나우인가 하이텔인가에서 몇 년전에 봤던 기억이 있는데 찾지를 못해서 그냥 제가 번역해 올립니다. 천리안이었나?--;)

[다케다 도키무네 인터뷰]

다케다 도키무네
홋카이도(북해도) 유베츠 출생 : 1916-1993

대동류 합기유술 종가

다케다 소가쿠의 3남 - 다케다 도키무네는 그의 아버지 밑에서 1925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1946년 홋카이도 경찰 교육을 수료하고, 1947년 장술을 지도하였다. 경찰재직 중에,
범인 체포에 대한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많은 상을 받았다. 1951년 12월 야마다 어업회사에 입사, 1976년 은퇴할 때까지 근무하였다. 도키무네는 대동관 도장을 1953년 홋카이도의 아바시리에 설립, 대동류 기술을 체계화하고, 오노하잇도류의 기술과 결합하여 자신만의 대동류 합기무도를 창시했다. 1987년 12월 3일에는 아바시리 시에서 문화사회교육상을 수상하였다.

다음 글은 1985년과 1987년 사이에 홋카이도의 아바시리와 도쿄에서 수차례 이루어진 도키무네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소가쿠가 합기유술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언제인가?

나는 합기는 처음 오래 전, 도쿠가와 시대 중에는 호신술로서 교수되었다고 생각한다. 대동류 유술의 기술중에는 한자한다치(반좌반립, 半座半立)이라 부르는 합기술의 특별한 형태가 있다. 오시키우치라 불리는 공간에서의 사용을 위한 기술들이 교수되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에도성의 영내로 들어갈 때, 모든 검을 압수당했다. 고위층의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소도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쇼군(장군)의 가문 앞에서는 무릎으로 걸어야 했다. 대동류의 반좌반립기술은 그 시대에 일어날지 모르는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사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반좌반립은 대동류의 커리큘럼에서 중요한 부분일 것 같다.

그렇다. 무릎걸음은 대동류의 기본기이다. 반좌반립기는 무릎걸음에 기반한 것으로 앉은 상태에서의 갑작스런 공격에 대응하여 사용된다. 정좌에서 시작하여 선 자세로 끝내는 기술은 대동류에만 존재한다. 다른 고무술들도 물론 앉은 자세의 적을 상대하는 기법을 갖고 있지만, 오직 대동류에서만 다섯방향의 적들을 앉은 자세에서 서는 과정을 통해 던지는 것을 배운다. 오방(五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오방던지기(고호나게)라고 부른다. 오방던지기에서는, 적을 자신이 방금 위치해 있던 전, 후, 좌, 우, 중심의 오방으로 던지게 된다. 이러한 기술은 대동류 특유의 것이다. 일개조, 이개조, 삼개조와 연계된 오방던지기도 있다.

-아이키도용어인 사방던지기(시호나게)는 대동류에서 온 것인가?

맞다, 손목뒤집기(고테가에시)도 그렇다.

-호흡던지기(고큐나게)는?

우리는 그걸 합기던지기(아이키나게)라 부른다.

-그럼 허리던지기(코시나게)는?

요차(腰車, 코시구루마)라 부른다.

-천지던지기(텐치나게)는?

그것은 합기던지기 기술 중 하나이다.

-일본잡기(一本取, 잇폰도리)같은 대동류의 기본기에 대해 설명해달라.

일본잡기는 오노하잇도류의 갑옷무장 상태와 연관되며, 소도가 사용된다. 검을 가진 상대에 의해 공격당할 때 자신은 뒤에서부터 찌른다. 대동류에선, 상대가 갑자기 가슴을 잡으며 공격해올 때, 상대를 잡아누른다. 이 기술은 적이 당신을 찌르는 상황에서 그를 제어할 경우에 적용된다.

다른 유파들과 다른 점은 무릎을 이용하여 상대를 잡아누른다는 것이다. 다음에 목을 자르기 위해 상대의 머리채를 잡는다. 이것이 진짜 대동류의 기술이다. '그런 것이 현대에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대동류에게는 기본이다. 상대를 무릎으로 누르면, 나의 양손은 자유롭다.(아이키도의 일교마무리를 손으로 하지않고, 무릎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역자 주) 다음에 그의 목을 베는 것이다. 그 시점이 될 때까지는 주의를 유지해야 한다. 일대다수의 경우에도 한명의 공격자는 나의 무릎 아래에 굳혀져 있으므로 자유로운 양손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것이 대동류의 정수이다. 상대를 나의 체중이 무릎에 모두 실어 누르면, 적은 일어날 수 없다. 각각의 모든 기술들이 치명적이다. 어떠한 기술도 적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

대동류의 교수법은 다른 유파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의 기술은 생사의 전투를 위한 진검을 사용한다. 대동류가 경찰서에서 사용되었을 때, 경찰은 점차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수련을 중단하고, 그저 부드럽게 상대를 잡아누르기 시작했다. 메이지 시대에도, 사람들은 더 이상 찌르거나 목을 베기 위해 적을 제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대동류의 정수는 적의 목을 베기 전에는 경계를 계속하는 것이다. 찌르기는 단숨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우리는 대동류 수련생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특히 교양한다. 그러므로 수련은 격렬하며, 여타의 수련방식이나 그저 합기를 사용하는 부드러운 수련과는 조금 다르다.

-합기의 개념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합기는 밀 때 당기고, 당겼을 때 미는 것이다. 느림과 빠름, 상대의 기와 나의 움직임을 조화한다는 마음이다. 그 반대인 기합은, 합기가 결코 저항하지 않는데 비해, 극한까지 미는 것이다.

합기는 상대가 먼저 공격해 올 때 호신기로서 적용되며, 우리는 그 용어를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 호신술로서 언급한다. 이 둘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경찰은 합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술이라 말한다. 그들은 선(先)의 선(先) 공격을 사용하는, 기합으로 싸운다. 공격은 기합이다. 합기는, 반대로, 후(後)의 선(先)이다. 경찰은 먼저 공격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것이 경찰이 대동류를 수련하는 이유이다. 근래에는 경찰이 사용하는 유도, 검도, 아이키도나 다른 무술들의 혼합체는 보통 체포술로 불리지만.

-소가쿠가 자신이 지도를 시작한 이후부터 시행한 세미나에 대해서 말해달라.

그는 10년간의 기간동안 10일짜리 코스로 지도했다. 이 무술이 체계적으로 퍼지기는 불가능했는데, 그것은 불행하게도, 소가쿠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도를 하며 세월을 보냈고 어떠한 지부도장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케다는 그런 타입의 인물이 아니었다.; 당시 그는 가르치는 자체에만 흥미가 있었다. 수련생들은 코스에 참가할 때마다 교수목록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야만 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제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지도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키도의 창시자인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소가쿠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인가?

1915년이다. 홋카이도 북부의 엔가루에 있는 히사다여관에서 만난 걸로 안다. 우에시바씨는 30대에 홋카이도로 농지경작을 위해 온 것 같다. 그는 자신의 2남과 3남-장남은 제외하고-과 함께 와서 홋카이도에 정착했다. 그는 아직 젊어 내 생각에는 그것이 상당히 힘들었으리라 생각된다.

우에시바씨는 1915년부터 1919년까지 약 5년간 나의 아버지와 대동류를 배웠다. 그는 광범위하게 수련했고, 열정적이었다. 그는 소가쿠의 애제자였다. 그러나, 나는 소가쿠에게 가장 꾸지람 받는 이였다. 나는 소가쿠의 아들이었으므로, 난 그가 날 꾸짖더라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우에시바씨는 가문의 일원이 아니었으므로 상당히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상상된다.

[출석표를 보며]우에시바씨는 정말 많이 수련했다. 이것이 처음이고, 여기가 두 번째, 그리고 이것이 세번째다. 여기 4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여기가 우에시바씨가 소가쿠의 조수로서 참가한 8번째 세미나이다. 합하면, 그는 수련생으로서는 70일을 수련했다. 여기 아직 9번째의 다른 참가가 있다.

-이것은 우에시바 모리헤이와 다케다 소가쿠 사이에 대한 초기의 기술(記述)과는 상당히 다른 것 같다.

그렇다. 우에시바씨는 또한 소가쿠와 상당히 자주 동행했다. 소가쿠와의 여행은 단순히 정규수련기간에 그와 수련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더한 것은, 우에시바씨는 소가쿠의 조수로서 가르치기도 했다.

-그래서 우에시바 선생은 소가쿠 선생의 조수로서 8번째 세미나부터 나오는 것인가..

맞다. 그때부터 그는 그와 동행하기 시작했다. 소가쿠는 경찰이나 판사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으므로, 우에시바씨는 아마도 이 무술은 대단하고 그가 이를 마스터하면 농사를 계속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대동류에 아주 헌신적이었으며 또한 매우 수다스러웠다. 소가쿠가 판사와 검사들을 하코다테에서 가르칠 때, 우에시바씨는 그의 동행인으로 나와서 그들을 가르치는 걸 도왔다. 그는 당시 30대였고, 이런 젊은 나이에 판사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보통, 당시에는 그러한 위체에 올라가는 것이 대단히 힘들었다. 지도원은 무사의 가문출신이 아니면 경찰에 의해 발탁될 수 없었다. 그것이 아주 확고했다. 그래서, 그런 젊은 나이에 판사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그러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인물이었다.

-우에시바 선생은 당시에 정식 지도원이었나.

사실, 그것은 훨씬 뒤이다. 그는 인증을 받기 전에 혼슈[일본 4대 섬중 가장 큰 섬]로 돌아갔다. 바로 여기에 그가 아야베에서 인증서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면, 나의 어머니와 내가 교토 근처의 아야베로 갔는데, 그때가 6살이었다. 우린 우에시바숙(植芝宿)이라 알려진 우에시바씨의 집에 오랬동안 묵었다. 나는 어렸음에도 수련광경을 지켜보았다. 당시에는, 40명이 있었다.

오, 여기 있군.. 이것이 우리가 그곳에 묵었던 기록이다. 그곳에서 5-6개월동안 있었다. 여기, 우에시바숙의 수련생들이 다케다 소가쿠 선생밑에서 대동류 유술을 지도받았다고 되어있다. 수련생의 다수가 오모토교 신자였다.

예를 들어, 세이초 가의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있다. 해군중장 아사노 세이쿄 역시 대동류를 수련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 역시 본 무술을 수련했다. 여길 보면, '우에시바 모리헤이'란 이름이 나온다. 1922년 4월 28일부터 9월 15년까지의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수련이 진행되었다고 똑똑히 나와있다. 소가쿠는 별로 오모토교를 좋아하진 않아서 그는 그 집을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별장'이라고 (비꼬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소가쿠는 4월 28일부터 9월 15일까지 매일 가르쳤나?

그렇다. 우에시바씨와 함께 가르쳤다. 이것이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의 교수대리 인증서이다. 그가 직접 쓴 필치로 이렇게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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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동류 합기유술을 지도한 학생을 선별할 시에는 바른 품행의 사람을 선택할 것.

2. 학생들을 지도할 때, 자신의 주소, 이름, 나이, 도장의 위치, 그리고 배운 내용을 교수목록에 적도록 하고 증명을 위해 도장을 찍게 할 것.

3. 학생들을 지도할 때, 각각 3엔씩을 다케다 소가쿠에게 등록금으로 납부하도록 할 것.

1922년 9월 15일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대동류 교수인증 , 1922년 9월에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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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이 교수대리 자격증을 받을 때마다 같은 말을 썼다. 우리가 지금 지부도장을 설립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에시바씨는 엄청난 양을 수련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말이다.

-소가쿠는 우에시바 선생의 초청에 아야베로 갔는가?

사실, 우에시바씨의 도장에는 해군출신들이 많았다. 모든 해군출신자들은 스모를 경험했고 매우 강했다. 우에시바는 그런 사람들을 다루는데 어려움을 겪고 다케다 소가쿠 선생에게 오기를 청한 것이다. 우에시바씨가 나보다 작은데 비해, 이 사람들은 체격이 컸다. 나는 그가 정확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 그들을 굳힐 수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합기만을 사용하여서는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소가쿠가 1922년 아야베에서 머문 이후에 당신의 아버지와 우에시바 모리헤이 간의 관계에 대해 말해 주겠는가?

우에시바 선생은 다케다 소가쿠의 최상급 제자중의 하나이며, 그의 아래에서 오랜 기간 수련했으므로, 난 내가 도쿄로 갈 때마다 그를 제일 먼저 방문하곤 했다. 그의 사망 이후에는 가지 않지만 말이다. 내 생각에는 다케다 소가쿠는 자신의 제자들 중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가장 총애했던 것 같다. 소가쿠는 우에시바가 오사카에서 체포되었을 때 엄청나게 걱정을 했다. 그는 사가와 유키요시와 나에게 그가 어떤지 알아보라고 시켰다. 당시, 우에시바는 타나베에서 가택연금상태였다. 소가쿠는 우에시바는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을 했다. 그는 항상 모리헤이를 챙겨주었다. 소가쿠는 그를 크게 믿었으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를 찾곤 했다. 우에시바는 건실한 학생이었다.

-다케다 소가쿠 선생은 단을 수여했는가?

아니, 그는 주지 않았다. 내가 단을 수여하는 것을 시작했다. 소가쿠는 목록, 오의, 개전이라 불린 두루마리를 주었다. 그러나, 그런 두루마리를 써서 수여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은 두루마리가 아닌, 단을 수여한다.

-대동류의 면허개전을 받은 이들을 얼마나 되나?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충분한 기간을 수련하지 않는다. 몇몇 사람들이 우리의 명단에 기록된 이름 옆에 '합기유술', '합기술', '오의', '이도류' 같은 주석이 첨부되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118개 기술까지 수련한다. 면허를 얻기 위해서는 매우 열심히 수련하여야 한다.

-오늘날의 아이키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었으면 한다.

아이키도와 대동류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대동류에서는, 한 번 적을 붙잡으면, 2차, 3차의 공격으로 끝장을 내야 한다. 기술들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2차, 3차의 기술로 이어진다. 일본 무도관에서 아이키도 기술들을 보아 왔지만 그러한 연무에서 부드러운 기술들을 하는 것을 알았다. 실전 상황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파트너들은 그저 그들을 위해 낙법을 해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낙법연습을 하는 것 같다. 당신의 파트너가 멋진 낙법을 선보이면, 당신의 기술이 멋져 보인다. 우리의 수련에서는 파트너가 낙법을 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우린 던지는 걸 수련한다. 그들이 낙법을 할 필요가 없다.


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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