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자 게시물 이동게시)
근래 일본무술계에서는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던 고무술이 새삼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현재 일본을 휩쓸고 있는 탤런트 배용준의 한류열풍에 버금가는 태풍이 무술계를 지난 1,2년 사이에 휩쓸고 있습니다.
이 태풍의 핵에 있는 사람은 무술연구가 고노 요시노리씨입니다. 그는 77년부터 자신의 개인 무술연구모임인 쇼세이칸을 설립하여(최근 모임을 해산하고, 개인 수련도장으로만 운영) 그 연구결과를 현대스포츠에 접목하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 결과물들이 근래 속속 등장하여 소위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고노 선생은 원래 아이키도 본부도장의 故 야마구치 세이고 선생에게서 아이키도를, 이후 고류검술 카시마 신류를 익힌 후에 자신의 무술연구소 쇼세이칸을 창설하였습니다. 그는 이후 본 사이트 자료실에도 게시되어 있는 쿠로다 테츠잔, 우시로 켄지 등의 고무술가들과도 교류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계속 하고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그 첫 결과물이자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일본 프로야구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쿠와타로, 당시 급격한 슬럼프에 빠져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노씨를 찾아 고무술의 움직임을 배웠습니다. 고무술의 연습과 이를 응용한 피칭을 꾸준히 한 결과, 그는 그 해의 방어율 1위에 올랐고, 일반적인 피칭과는 좀 다른 그의 동작이 고무술의 수리검을 던지는 동작에서 나온 것임을 안 스포츠계는 경악합니다.
이후 한 육상 선수가 난바하시리(난바달리기)라는 일반적인 주법과는 정반대의 같은 손과 발이 나가는 고무술의 주법을 응용하여 그해 육상 선수권에서 좋은 기록을 세웁니다.
한 중학 농구부 역시 고노 선생으로부터 난바하시리와 고무술의 움직임을 접목한 농구로 그해 인터하이에 진출합니다.
고노 선생은 NHK의 TV프로에 출연,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한 고무술의 강의를 하였고, 그의 명성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종합격투가 스도 겡키(그의 변칙적 스타일에는 원래 고무술적인 요소가 많았으나) 역시 잡지사를 통한 대담에서 고노 선생으로부터 고무술의 동작원리를 익힙니다.
이외에도 많은 결과물이 나왔고, 고노 선생은 일약 무술계에서만이 아닌 일반인에게서도 유명인이 되었으며, 그 수준은 슬램덩크, 배가본드의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와의 대담집이 출판되고 각종 시사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되자 그때까지 소수의 수련자들에게서만 알려져 있던 무술연구가들, 그리고 고무술에도 일반인(수련생)들의 관심의 초점이 모이게 되고, 더욱 다양하고 활발한 연구결과와 이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북진일도류 세미나 때에 이승혁씨에게 고노 선생에 대해 질문하였던 바 '그 선생은 정말 매우 유명해졌다. 통상의 무술기법이나 이론과는 조금 다른 변칙적이고 자신만의 스타일이긴 하지만.'이라는 답변을 하더군요.
고무술과 현대스포츠(무도)의 접목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일본의 유명한 홈런왕 왕정치의 유명한 외다리 타법에도 역시 고무술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당시 자이언츠의 타격코치였던 아라카와씨는 보다 효과적인 타격법을 모색하던 중, 아이키도 본부도장에서 아이키도를 수련하고, 이외에도 거합도를 병행하여, 왕정치에게 가르칩니다. 당시 고바야시 선생 역시 본부도장 지도원으로서 위 작업에 관여하였습니다. 왕정치의 사진 중에 진검을 들고 시참대와 공중에 매단 종이를 베는 장면이 있는데, 위의 이유에서 입니다. (여담이지만, 선생의 자서전에는 자신은 야구에 별 관심이 없어 왕정치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란 느낌이 없었는데, 함께 거리를 가다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매우 놀랐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왕정치의 고바야시 선생 50주년 축하 사인도 들어있군요.)
현 신극진회의 에이스 중 한 사람인 츠카모토 노리치카와 종합격투가 곤도 유키 역시 고무술 원리를 응용한 새로운 몸놀림을 익힌 사람들입니다. 극진관의 수장인 노초웅씨 역시 선수시절 잠깐 극진회를 그만 두고 태기권을 익혔으며, 조난지부의 선수들에게 지도했습니다. 그 선수 중에는 현재 극진회를 탈퇴하고 독립한 카즈미 하지메가 있습니다.(요즘은 요가를 하더군요.)
고노씨 이외에도 일본에는 여러 유명한 무술연구가가 포진해 있습니다. 다카오카 히데오씨는 스포츠맨들의 움직임을 도해로 분석하면서 무술적 운동역학을 통한 저서를, 히노 아키라씨는 기공과 각종 고무술을 자신만의 이론으로 재구성하여 다양한 세미나와 저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역시 여담입니다만, 히노 선생은 윤대현 관장과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만 알지 이름과 얼굴은 모르는 상태였던지라, 히노 선생의 이론이 실린 책을 보고는 관장님께 확인해보니 역시나 더군요. 관장님을 놀래드리려 했는데 오히려 머쓱했습니다.)
무술수련자로서 일본이 부러운 것 중의 하나는 위와 같은 활발한 연구와 이론, 그 결과물이 속속들이 공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쓰잘때기 없는 것들도 있지만, 수련에 큰 힌트를 줄만한 옥석도 분명 존재합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할 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더욱 큰 차이일 겁니다.
고무술과 그에 연원을 둔 아이키도 등의 무술의 몸놀림은 일반인과 현대스포츠계의 상식과는 대치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노씨는 서양의 신체이론이 필요부분을 강화시키는 '덧셈'개념이라면, 동양의 이론은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뺄셈'의 개념이라 비유하더군요. 오랜 기간 전수되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 서양의 신체이론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생경하고 새로운 방식'입니다. 부담되는 면이 없을 리 없습니다.
얼마전 동심을 뒤흔들었던 만화 '권아'를 기분전환 삼아 다시 보다가 마음에 꽂힌 부분이 있습니다.
'이 새벽에 뭐하시나요?'
'oo을 연습시켰다.'
'에게, 겨우 그거 하나요?'
'겨우 하나더라도, 새벽에 잠자고 있던 너보다는 하나를 더 알게 되지 않았느냐'
마지막으로 故야마구치 세이고 선생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0년간 수련하다가 오른 어깨 부상으로 아이키도 수련에 회의가 든 엔도 세이시로 선생(당시 지도원)에게)
'10년간 수련하여 이제 왼팔만 남았다. 남은 인생의 수련은 어떻게 할 거냐? 새로운 방법으로 다시 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처음이라는 생각으로 10년을 더 투자해보아라.'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