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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도장 수행시절>-2006/02/24일자 블로그 제가 본부도장에 입문하여 합기도의 수련을 시작한 것이 1955년이었습니다. 종전 후 10년된 때로 조금씩 세상이 안정되고 있었습니다만, 세간 일반에는 아직 식량난, 주택난의 시절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합기도는 세상에 알려져있지 않고, 전화로 불타 쫓겨난 사람들이 도장에서 임시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본부도장에서는 묵고 있는 젊은이들을 매우 관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대학생, 일하면서 수련하는 사람, 또 합기도 전문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낡아빠진 도장에 묵고 있었습니다. 돈은 없지만 뭔가 인생에 목적을 가진 개성이 풍부한, 약간 이상한 사람들의 집단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전쟁 전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 또는 당시 도장장이었던 기쇼마루 선생에게 지도를 받은 사람들의 아들 또는 지인들이었습니다. 기쇼마루 선생이 와세다 대학 출신이고 본부도장이 대학과 가까워서 와세다의 학생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꽤 진지하게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만, 다른 대학생은 의학부에 합격하고서도 피를 보는 것이 싫어서 중퇴하고, 마작 도박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거나, 닛쿄 대학생은 부모가 부자인지라, 모두들 도장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데 혼자서 모기장을 치고 자고 있거나 했습니다. 함께 도장에서 살고 있어도, 무슨 일을 하는지, 태어난 곳도 살아온 일도 전혀 말하지 않는 선배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도장에 와서 '내제자가 되고 싶다'고 청했다가 거절당하니 도장현관에 며칠이고 앉아있어 기쇼마루 도장장도 마음이 약해져 허가한 사람도 있습니다. 오는 사람이 있으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로 온지 3일이 지나자 짐을 놔둔 채로 없어진 사람도 꽤 있습니다. 저는 선거도 학구도 제1구, 도쿄 치요다구 구단의 도시출생, 대학은 걸어서 15분 거리입니다. 지금까지의 친구들과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들과 처음 대면한 겁니다. 합기도의 수련도 즐거웠지만, 일본 각지에서 온 개성 풍부한 내제자들과 함께 하는 생활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자택도 본부도장이 가까운지라 잘 때만 귀가하거나 말거나 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느새 우에시바 기쇼마루 선생도 익숙해져 내제자와 완전히 같은 대우를 해주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전혀 모르는 우에시바 큰선생의 옛 내제자가 상경하자마자 도장에 와서, 여관 대신으로 자고 있다거나, 현관에서 좌선을 하고 있다거나 꽤 이상한 사람들이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부분이 만주낭인(滿州浪人)이라 불리던 사람들입니다.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 살아남아 돌아왔으므로 근성은 깔려 있습니다만 방약무인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경악했던 것은 기쇼마루 도장장의 대리로 제가 수련지도를 할 때였습니다. 사범이 서는 자리 가운데서 거합을 시작하는 것에는 저도 놀랐습니다. 역시 저도 화가 치솟아 대선배임에도 못하게 했습니다만... 본부수행시절에 저는 세상에는 우에시바 큰선생을 비롯해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 일이 도장을 열어 합기도를 보급지도하고 있을 때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