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al & Error/~20062006/10/28 13:46

5월 5일 밤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는, 다음날 5월 6일이 되자 폭우로 변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남부지방은 중부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비가 온다는 예보로 지방도장장들께서 오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높은 습도로 인한 질척질척한 느낌. 덥고 습한 걸 매우 싫어하는 지라 본부도장을 향하는 길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도원 보수교육이 예정된 오전 10시보다 40분 빨리 도착하여 아무도 없었는지라, 갖고 간 책을 보면서 시간을 죽였습니다. 아사다 지로가 쓴 '칼에 지다(원제;  任生義士傳)'로, 동명의 영화(국내에는 '바람의 검, 신선조'로 소개)도 만들어져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입니다.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으로 꼽겠습니다. 수련시간이 다가오면서 이호석 지도원, 장재봉 청주도장장 등이 속속 도착하였고, 10시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체술에 비해 무기술이 많이 떨어지는지라, '주환이는 무기술만 하면 버벅거리기는구만.'하시는 관장님의 말씀이 가슴팍에 꽂혔습니다. 사이토 선생의 우직한 느낌의 무기술에 비해, 가토리 신토류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스가와라 선생의 무기술은 검리에서부터 차이가 나고,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정신이 없습니다.

11시가 되자, 김성무 부산도장장, 문영찬 제주도장장 및 제주회원들이 속속 도착하였습니다. 먼길과 폭우를 마다않고 찾아오는 그 열정에 다시금 감탄하였습니다. 역시 비슷한 시각에 도착한 본부도장의 회원들과 함께 용산으로 향했습니다. 전쟁기념관 앞에서 신수철 양재도장 지도원과 사토 하루히코 선생 및 회원들과 합류, 용산 아이키카이의 회장 세스의 인솔로 미8군기지에 들어갔습니다. 조 보웬 지도원이 영국으로 떠난 후 용산 아이키카이를 맡은 세스는 육군 소령으로, 41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단단한 체격과 젊음을 과시하는 사람입니다.

미8군기지를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곳을 두고 많은 격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무엇보다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큽니다.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는 이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지만, '미군'과 '한국인'으로서의 만남은 약간은 껄끄러운 앙금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아이키도를 통해서 비록 작으나마 '교류하며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야외로 예정되었던 행사는, 우천으로 실내로 옮겨졌습니다. 미군 내 각 출신국가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로서, 필리핀, 괌, 사이판, 사모아 등의 전통 음식 과 수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 김치회사의 부스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한국인으로서도 평소 쉽게 접하기 힘든 김치를 맛있게 시식할 수 있었습니다. 사모아의 전통 무기를 전시해 놓은 부스에서는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무기로 쓰기엔 너무 아름다워요.'라고 부스 매니저에게 한 마디 던졌습니다. 카메라를 갖고 가지 않아 찍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무도 연무는 미8군 내에서 클럽 차원에서 수련되고 있는 무도들의 연무였는데, 태권도, 합기도(Hapkido), 수박도, 검도, 그리고 아이키도 및 북진일도류 였습니다. 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의 검도 시범을 보았는데, 앳된 여생도들의 서툴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학창시절 시범단 활동하던 게 생각나 웃음지었습니다.

아이키도 측의 연무는 전체연무-지도원 연무-무기술 연무로 이루어졌습니다. 우선 윤대현 관장님이 시범을 보인 후에, 나머지 회원들이 그것을 따라 시연하는 형식으로 전체연무를 행하고, 다음으로 각 지부도장장들의 합동 연무와 운영자의 개인 연무, 관장님과 제주지부의 무기술 연무로 이어졌습니다. 연무를 위해 서로 맞춰놓거나 한 것이 아니라, 평소 하던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이키도 연무의 특징인지라, 파트너도 스테이지에 올라가기 직전에 정해졌습니다. 초심자에서 유단자 모두가 참가하여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므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관람자에게도 참가를 권하는 듯한 분위기'라고 할까요.

높은 습도와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로 땀범벅이 된 채 자리에 돌아온 직후 행해진 사토 선생의 북진일도류 연무는 그 열기를 그대로 식혀버릴 정도의 엄숙함과 냉정함이 돋보였습니다.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본인의 페이스대로 묵묵히 움직이면서도 팽팽히 조여드는 듯한 선생의 검은 참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평소의 순박한 아저씨 같은 모습은 검을 들기만 하면 온데간데 없어져 버리고 마치 하나의 벽이 서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연무가 종료되고, 세스가 돌린 맥주 한 잔은 평소 술을 마시지 않음에도 '맛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운동 후에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킨다는 말을 이제서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주당들은 '싱겁다'는 반응이었지만..

함께 식당으로 이동하여 식사를 마친 후, 본부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회원들은 모두 돌아가고, 지도원들만 남아서 5시부터 8시까지 교육을 마친 후, 다시 근처 닭갈비 집에서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잔을 기울였습니다. 2차를 마무리하고, 도장으로 돌아와 3차를 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비록 도장에서는 후배지만, 인생에서는 선배인 분들의 말씀은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새벽까지 이어진 이야기를 뒤로 하고 아침 지하철을 타고 인천수련모임을 지도하러 가는 길은 아쉽기만 하더군요. 수련모임의 회원들에게도 권하였습니다만, 앞으로도 좋은 기회가 많이 있을 테니, 꼭 참여해 보아주시길 권합니다.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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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무 당시의 사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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