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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울
2006. 6.9-10 방문
2006. 7. 1. 작성

「후레아이숙(ふれあい塾)」주최의 한국 합숙에 참가해, 서울에 있는 대한합기도회 본부 도장에서 합동 연습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합숙은, 부산 출신의 박 양의 모국에서 합숙을 하지 않겠느냐는, 술자리에서의 건의가 발단이었습니다. 합숙의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는, 원래 한국에 아이키도 도장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래도 합기도라는 아이키도와 같은 한자표기를 하는 무도가 있는 듯 하다는 소문 밖에 들은 적이 없는 정도였지만, 박 양과 이마이 씨가 합기회(아이키카이) 본부도장에 문의하고 한국의 홈페이지를 검색하여 정보를 수집해, 대한합기도회와 연락을 하는 것에 성공하여 실현된 것입니다. 관광을 포함하여 3박4일의 스케줄이었기에 직장 사정상 참가하지 못한 사람도 있엇습니다만, 최종적으로 후레아이숙, 치요다구 아이키카이, 메이지대학 교직원 아이키도클럽에서 총 13명이 모이고, 예전에 치요다에서 수련하던 박 양의 남동생도 부산에서부터 참가했습니다. 합동수련은 본부도장에서 6월 9일 18:30-20:00, 6월 10일 10:00-11:30 및 18:30-20:00의 합계 3회 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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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합기도회 본부도장은, 그 이름대로 한국에 있어 아이키도의 중심이며, 윤익암 선생이 도장장으로서 지도하고 계십니다. 이 협회는 서울에 있는 복수의 직할 도장이외에, 대구, 광주, 부산, 제주, 창원 등 11개 지역에 관련도장이 있어, 한국내에서 적극적으로 아이키도의 보급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만해도 한국내 5개소에서 특별강습회를 실시, 해외에서 선생을 초빙하여 강습회를 6회 개최, 또 협회 지도원의 실력양성을 위한 본부도장 특별연수회를 8회 거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또 해외와의 교류도 폭넓어, 일본은 물론, 미국, 캐나다, 영국, 헝가리, 대만, 스웨덴, 핀란드, 슬로바키아, 타이 등의 단체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호텔 도착 후, 용변을 서둘러 마치고 구보로 도장으로 향했습니다. 도장은 대학이 다수 모여있는 신촌에 있습니다. 신촌 로타리에서 이화여대 역으로 수미터 걷다가 왼쪽을 올려보면 노란간판에 AIKIDO란 글자가 보이므로 장소는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간판이 있는 빌딩의 지하 1층이 도장이었습니다. AIKIDO라 쓰인 큰 간판에 압도되면서 계단을 내려가 들어가니, 윤 선생과 윤 선생의 사모님, 그리고 도장생들이 저희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도장의 넓이는 40다다미에서 50다다미 약간 못 미치는 정도. 생각보다 넓지 않았습니다. 마루가 녹색 매트에 덮여 있어 이것이 형광등의 빛을 반사해 실내가 옅은 녹색으로 보였습니다. 정면에는 한국의 국기를 사이에 두고 개조와 고바야시 사범의 사진, 그리고 '오승(吾勝)'의 족자가 장식되어 있고, 말석 쪽에는 도장생들의 도복이 죽 걸려있었습니다. 또 벽에는 목검이 다수 걸려 있어, 그 닳은 상태로부터 무기 연습도 상당히 하고 있다는 걸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합동연습 중, 본래라면 방문한 저희들이 윤 선생의 지도를 받아야 했습니다만, 선생은 우리의 대표인 '후레아이숙' 숙장인 이시바시 씨에게 지도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아마 학생들에게 평상시와 다른 기술을 경험시키고 싶다는 지도자로서의 배려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습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한국 그룹과 일본 그룹은 나눠서 앉아있었습니다. 첫대면인지라 서로 다소 사양하고 있었겠지요. 그것을 본 윤 선생은 '가능한 한 일본인과 함께'라고 학생들에게 지시하셔서 교류를 재촉해주셨습니다. 선생은 수련중에도 도장 구석에서 전체를 바라보며 저희들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계셨습니다. 저희들의 기술이 이 도장의 스타일과 다르기 때문에, 연습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부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저희들이 어떤 스타일의 아이키도를 하는 것인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간에 윤 선생은 지도자로서 챙겨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고바야시 사범의 계통과 故 야마구치 사범의 계통은 스타일이 다르기는 해도, 실제로 연습을 해보면 각자가 각각의 방법으로 서로의 움직임에 적응해, 기술을 성립시키고 있었습니다. 양쪽 모두 개조를 원류로 한 합기회 계통의 아이키도를 하고 있어,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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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의 수련 종료 후, 윤 선생의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가게에서 친목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요리는 삼겹살이라고 하는 이른바 한국식 돼지고기 바베큐였습니다. 한국 불고기라고 하면 우리는 쇠고기를 떠올리기 쉽상입니다만, 박 양에 따르면 돼지고기가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김치나 게장 등의 기본 안주가 충실한 데다, 쌈싸는 야채도 충분히 있어 매우 만족했습니다. 우리는 첫날 조속히 그 본령을 발휘하고, 70병 가까운 맥주병을 비워, 나온 것을 싹쓸이해버렸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 가까이에는 일본어나 영어를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앉아준 덕분에,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키도 뿐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케로로 하사' 등이 화제가 되어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컵을 쥔 손에 아이키도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말해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틀째의 오전에는, 전반을 윤 선생이 후반을 이시바시 씨가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윤 선생이 지도하신 기술을 리스트로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엇서 손을 마주 대고 전환(복수를 연속으로)
2. 한손잡기 정면타 입신(복수)
3. 한손잡기 2교(옆으로 처리, 앞,뒤)
4. 한손잡기 전환으로부터 호흡던지기(앞, 뒤)
5. 한손잡기 정면타 호흡던지기(천지던지기와 같은 형태)
6. 한손잡기 2교(잡지 않고 거는 변화기)
7. 1교에서부터 4교까지의 연속기
8. 양손잡기 호흡법(받기가 만세하듯이 양손잡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운동은 전환과 입신을 몸에 익히기 위한 연습법으로, 발놀림을 몸에 익히는데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5번째의 기술은, 사이토 모리히로 사범의 '무산합기도 제3권 기술편 |||'에 한손잡기 천지던지기로서 실려있는 기술로, 6번째의 2교는, 역시 사이토 사범의 '무산합기도 제1권 기술편 |'에 한손잡기 2교 변화(3)으로서 실려있는 기술이었습니다.
윤 선생은 그리 키가 크지는 않았습니다만, 단단한 체격에 어떤 기술이든 박력이 있었습니다. 선생의 기술은 모두 확실히 아이키도의 것이며, 다른 무도의 기술이 섞여있는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중량감이 있지만 발놀림이 명확하고 크며, 자세가 제대로 앞으로 향하여 슥 하고 손이나 기가 늘어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의 지도시간은 40분 뿐이었던 것이 유감입니다.
오전중 연습한 가운데에는, 하카마를 입고 있는 구미인 2명의 레벨이 다른 사람보다 높은 듯 했습니다. 흥미를 느껴서, 그 중 한 명에게 나중에 물으니, 지금은 주한미군으로 일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각국에서 아이키도를 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치요다구 아이키카이는 마스다 사범의 관할이라고 설명하니, 하와이에 있을 때 사범의 강습회에 간 적이 있다고 하여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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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정확히 본부도장 특별연수회와 겹쳤기 때문에, 한국 각지에서부터 협회 지도원 및 수련생들이 집합하여, 저녁이 되자 유단자의 수가 증가했습니다. 유단자의 표정은 진지하여 첫날과는 분명하게 도장의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이시바시 씨는, 무엇을 지도할까 궁리한 결과, 검을 가지고 하는 체술을 선택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검을 가진 잡기에 대해 받기가 손을 잡으러 가, 전환에서의 무너뜨리기, 사방던지기, 회전던지기, 호흡던지기 등을 행하는 것입니다. 인원수에 비해 도장이 좁았기 때문에,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눠 연습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런데도 주위에 신경을 쓰게 되는 연습이 되어버려, 회수에 대해서도 기분상으로도 소화불량에 끝나버렸습니다. 기술의 이치를 알 수 있는 좋은 연습법이므로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흰띠나 하카마의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느낀 것은, 여기의 수련생들은 모두 받기에 무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함께 간 여성 중에는 '상대의 힘이 강해서 큰일이었다.'라고 귀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체를 굳히지 않는 제대로 된 받기를 취하는 것에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고뱌야시 도장에서 단기이지만 내제자를 경험한 사람들은 심지가 좋은 아이키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할 수 없는 기술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떻게든 이해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틀째의 연습에서는 여러가지 레벨의 사람이 각지에서 모여있었기에 인상을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굳이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젊다'는 인상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젊은 남성의 비율이 높고, 체육회계와 같은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50세를 넘긴 연배의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여성도 거의 없었습니다. 물어보니 한국에서는 여성이 무도를 하는 일은 거의 없어, 본부도장에서도 여성은 아직 5명 정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일본에서 방문한 멤버는 20대의 젊은이부터 60대가지 남녀노소로 구성되어잇어, 그 다양함(?)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젊다는 인상을 가진 또 하나의 이유는, 수련생들로부터, 아이키도를 좀 더 알고싶다, 더 잘 하고 싶다는 강한 열의와 성장의 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도장에 모인 수련생의 의욕이 높은 배경에는, 한국의 아이키도 역사가 20년이 채 되지 않고 짧은 것과도 관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윤 선생의 노력 덕분에 아이키도는 한국 각지에 퍼졌다고는 해도, 아직 아이키도 인구도 한국어로 얻을 수 있는 아이키도의 정보도 제한되어 있겠지요. 특히 실제로 고단자의 기술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는 아직도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환경이 수련생들의 학습의욕의 배경에 있으리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이에 반해, 아이키도의 메카인 도쿄에 있는 저희들은, 본부도장에 가기 쉽고, 혹은 고단자의 지도를 받기 쉬운 장소에 있기에, 그 풍족한 환경이 당연시되고 있는 듯 합니다. 또 고단자에게 스스로 달려와 고개를 숙여 지도를 부탁한다라는, 이른바 대학생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일본의 도장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도장은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므로, 이러한 태도는 취하기 어려운 건지도 모릅니다만, 아이키도 뿐만 아니라 무도라는 것은 '배운다'는 태도로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의 젊은 아이키도인들은 어떻게든 능숙한 사람으로부터 기술을 흡수하고 싶다는 욕구가 느껴져, 향후 틀림없이 높은 경지에 이르리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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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선생의 요청에 의해, 합동수련의 결말로서 이시바시 씨와 메이지 대학 교직원 아이키도클럽의 사토 감독이 연무를 실시했습니다. 평소와 달리 기합이 들어갔는지, 매우 절도가 있는 날카로운 연무로 받기를 하는 것도 필사적이 되었습니다.
그 후, 도장에 상을 늘어놓고 맥주 파티가 열렸습니다. 몇 번이고 건배가 반복되어, 일본의 합숙과 같이 여기저기에서 기술의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월드컵 시합이 가까웠기에, 한국과 일본의 응원구호 교환까지 나와, 전날보다도 훨씬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윤 선생의 사모님이나 그 외의 폭주가들에게 권유받는 대로 건배를 반복하여, 완전히 취해버렸습니다. 도장에서의 파티는 11시에 접었습니다만, 그 후 2차에 돌입하여, 도장 가까이에 있는 가게에서 심야 2시경까지 아이키도 얘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정도로 즐거운 회식은 좀처럼 있는 게 아닙니다. 이 합숙에 참가할 수 없었던 사람은 많이 후회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파티에서 나는 여러 사람과 아이키도 얘기를 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이시바시 씨의 기술을 보고 故 야마구치 사범의 계열이라고 간파한 성주환 이라는 사람에게 놀랐습니다. 그는 현역 경찰관으로, 아이키도나 일본의 무도에 대해 이해를 높이고 싶다며 일본어를 독학하여, 그 결과 유창한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7년에 그가 시작한 아이키도의 홈페이지가 있어, 저는 내한 전에 그것을 한일웹자동번역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인지라 부디 관리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였습니다. 일본의 무도 사정에 대단히 자세히, 뭐든지 알고 있다는 느낌인지라 한국 제일의 무도오타쿠(매니아)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한국에서 아이키도를 수련하는 사람은, 이미 태권도, 합기도, 복싱 등 이미 다른 무도나 격투기를 경험한 일이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 자신도 합기도를 했지만, 백덤블링 등 무술로서 그리 의미가 없는 움직임을 하도록 하여 허리를 다쳐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격투기는 대체로 폭력에 의한 해결을 긍정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것이 일상생활에서의 폭력사태의 원인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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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각지에서 모인 아이키도인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마 10년이나 15년 후에는 이 젊은이들이 핵심이 되어 한국의 아이키도계는 지금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을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 아이키도의 여행에서 가장 기쁜 것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친구가 해외에 생기는 것입니다. 대한합기도회의 사람들과는 앞으로도 교류를 계속할 것을 서로 맹세했습니다.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반드시 만날 기회가 곧 오겠지요. 그때 우리는, 이번 합숙보다도, 더 수련을 하고 더 마셔서 더 이야기를 할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아이고 씨,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