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 수련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즐거운 토픽은 역시나 무술 이야기입니다. 같은 무술을 하는 사람과 하는 대화도 물론 재미있지만, 다른 무술의 수련자와 나누는 대화 또한 재미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UN Police는 제게는 최적의 장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무술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은 편이기에 무술 수련자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고, 본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브라질 유술(Brazilian Jujitsu), 쇼린지 켐포(Shorinji Kempo)와의 경험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아르니스(Arnis), 카포에라(Capoeira), 삼보(Sambo), 우슈(Wushu) 등의 수련자들과도 만났습니다. 새로운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그 나라의 무술에 대한 토픽을 슬쩍 던져보고, 실제 수련자일 경우 우선 무조건 가르쳐달라고 조릅니다. 그러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면서 친한 친구가 됩니다.
가장 인상 깊은 경험이 아르니스와의 것이었습니다. 칼리(Kali) 또는 에스크리마(Escrima)라고도 불리는 필리핀의 무술입니다. 몽둥이나 나이프를 주로 사용하는 일견 단순하게 보이는 무술입니다만, 그 속도와 정확성은 탄복할 정도입니다. 특히 바톤(Baton)을 사용하여 나이프(Knife)에 대항해야 하는 경찰관으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도 경찰봉 사용법이 있지만, 그것이 정말 효과적인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인들을 만날 때마다 ‘아르니스를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며 찾아 다녔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외국, 특히 미국에서의 명성에 비해 막상 필리핀인들 중에 아르니스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고 합니다. 낙심에 낙심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결국 아르니스를 하는 사람을 찾아냈습니다만, 어처구니 없게도 바로 저와 같은 CSP Unit에 근무하는 동료였습니다. 게다가 국가대표선수. 이런 경우를 두고 ‘등잔 밑이 어둡다’, 그리고 ‘땡 잡았다’는 말을 쓰는가 봅니다.
필리핀인 경관 데니스(Dennis)에게 몇 번이고 가르침을 부탁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뒤로 뺍니다. 다시 찾아가 제 경찰용 삼단봉을 직접 쥐어주고 나서야 잠깐 한숨을 쉬면서 아르니스의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역시나 전광석화, 눈 깜짝할 사이에 봉이 제 몸 여러 곳을 치고 지나갑니다. 나이프의 움직임 역시나 재빨랐습니다. 이 정도의 실력자와 거리에서 맞붙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에게서 아르니스의 기초를 배우면서 여러 얘기를 나눴습니다만,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아르니스와 아이키도의 움직임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데니스는 아이키도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자신의 VIP인 대통령이 참가하는 행사 경호를 위해 GMT에 왔다가 제가 주관하고 있는 아이키도 클래스를 멀리서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움직임의 유사함에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필리핀의 경찰학교에서도 아르니스와 아이키도가 지도되고 있고 크로스 트레이닝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데니스는 가라데(Karate)를 수련하기도 했지만, 아르니스의 움직임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아이키도와 아르니스는 서로 잘 어울리며, 경찰관을 위한 무술로서도 최적의 무술이라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결론은 타국의 경찰관들에게서도 자주 들은 얘기입니다. 여타 무도보다 우월하다는 게 아니라, ‘경찰관으로서’ 가장 적합한 무술을 꼽을 때의 얘기입니다. 유니폼을 입고 장비를 착용하는 직업적 특성상 피의자를 때리고 차거나, 서로 땅바닥에서 뒹구는 것이 적합하지 않고, 총을 휴대한다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데에는 큰 제약이 따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손을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아이키도, 경찰봉을 사용할 경우에는 아르니스가 가장 경찰관에게 알맞은 무술이 아니겠느냐 하는 의견을 많이 들었습니다.
위와 같이 무술 얘기를 하면서, 친구를 사귀고, 수련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과정의 즐거움을 이곳 동티모르에서 맛보고 있습니다.
p.s. 이번 목요일 8월 23일자로 9개월에 가까운 기다림을 뒤로 하고, 드디어 경찰학교 교관으로 입성합니다. Hoo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