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연무대회에서 2년만에 야마와키 선생을 뵐 수 있어서 아주 기뻤습니다. 2006년 연무대회시 해외에서의 생활에 대한 많은 조언을 해주시고 관심가져주신 것을 언제나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년 전국의 수련생들이 한 가족으로서 함께 한다는 것 역시 아주 기쁜 일입니다. I was so glad to meet Yamawaki sensei in 2 years. I always appericiate his advice just before my depature to TL in 2006. And it's also great to meet students from all over Korea as a family every year.
승단심사에서는 4단 3명(전용선 대구도장장, 남광희 안산도장장님, 오철호 선배)가 예년에 이어 배출되었고, 2단 5명, 초단 20명이 합격했습니다. 야마와키 선생은 제게 귀엣말로 '2-4단 응시자의 실력이 일본보다 오히려 높다. 다수 처리기에서는 일본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기술들도 나오는 것이 이채롭다'고 하셨습니다. This year we have three new 4th dan(JEON Yong-seon(Daegu dojocho), NAM Kwang-hee(Ansan dojocho), OH Cheol-ho), five 2nd dan, 20 shodan. Yamawaki sensei gave me a wisper '2nd-4th dan attendants' level of skill is even better than Japan. And it's also colorful to see the rare techniques which are hardly seen in Japan during multi-attacker techniques.'
세미나가 종료된 직후 시작된 연무대회에서는 종전과는 달리 무기술의 연무가 많았습니다. 사회자를 한다는 핑계로 숨어있던 저를 야마와키 선생께서 우케로 지목하셨을 때는 마치 사형언도가 내려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만, 다행히 짧게 끝내주셨습니다. 56세의 선생도 여전히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변화하시는 것에 귀감을 받습니다. In demonstration we could see a lot more buki-wazas than before. Yamawaki sensei gave me a death sentence picking me up as one of his ukes while I was hiding myself as MC. But mercifully he didn't last the demo that long.
끝으로 모두에게 이러한 자리를 만들어주시느라 애쓰시는 스승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I give my deepest appreciation to Youn sensei, who always try hard to give us all he can do.
'이게 무슨 퀴퀴한 냄새야?' 코를 찡그리며 퀴퀴한 냄새의 진원지를 찾던 아내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베란다에 걸려있는 하카마. 땀을 많이 흘리는지라 도복이야 항상 세탁한다지만, 하카마는 말리기만 하는 편인데, 빨고 나서 주름을 다시 잡는 게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하카마는 빠는 게 아니다'는 히로아키 선생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라는 좋은 핑계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로서도 거역할 수 없을 퀴퀴함이라 고개를 푹 숙이며 세탁기로. 불행 중 다행인지 지금 가진 Xebec제 하카마는 100% 폴리에스테르라서 세탁기에 넣어도 주름 걱정 없어서 안심.
'What's this stench?' Wife's eyes, frowning with the bad smell, serched its origin and stopped. The hakama hung on the porch. I always keep dougis clean, but I only keep the hakama dry. It's not only because it's so difficult to iron the skirt, but also I keep a lesson from Hiroaki sensei,'Don't wash your hakama'.. But this time, the overwhelming stench forced even me to take it to the machine. Out of the luck, the current Xebec hakama of mine is of 100% polyester, it's fine with machine-laundry.
야마시마 타케시 7단 선생을 비롯한 치요다구합기회와의 수련이 끝났다. 야마시마 선생은 65세, 故야마구치 세이고 선생의 제자이자, 신카게류 검술의 면허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2년전 이시바시 선생의 후레아이숙과 치요다구합기회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맺어진 인연은 윤익암(윤대현) 관장님의 치요다구합기회 주최 카시마 합숙으로, 다시 야마시마 선생의 한국방문으로 이어졌다. The training with Takeshi Yamashima sensei(7th dan) and Chiyiodaku Aikikai is over. Yamashima sensei, 65 years old, is a student of the late Seigo Yamaguchi sensei, and he has a menkyo of ShinKage-ryu. The friendship firstly made by the vist of Ishibasi sensei's Fureai-juku and Chiyodaku Aikikai continued to Yoon sensei's visit to Kashima gasshuku, and returned by Yamashima sensei's visit.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 'One seeing is better than 100 times of asking, and One doing is better than 100 times of seeing.'
작은 키의 약간 풍채좋은 할아버지의 외양은 故야마구치 선생의 샤프한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표현하는 기술들은 그 스승의 것을 충실히 전하고 있음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수련 후 회식자리에서도 故야마구치 선생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이시는 모습에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Yamashima sensei's look as an ordinary old man with short height is not like the sharpness of the late Yamaguchi sensei, but you can see at once that he hands down what he learnt from his master.(At the party after the training, I could see his endless respect to Yamaguchi sensei when I talked of him.)
'유능제강'이란 말은 무도계에서 일반화되다시피 하였고, '유'에 대한 언어적 정의와 몸으로의 표현도 제각각이겠지만, 야마시마 선생의 기술을 받아본 느낌은 그야말로 부드러운 젤리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듯한 것이었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은 '내 공격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듯 했다'고 하였다. '몸에 닿는 순간 튕겨나가는', 혹자는 영화나 만화의 것으로만 여길 기술들을 직접 받아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말씀이 나직하면서도 어찌나 빠르고 긴지 통역하기가 아주 까다로웠지만, 내용의 요지는 언제나 '허리(중심)의 콘트롤'.
The term 'the Softness can overcome the hardness' is heard everywhere in MA world, and everyone has its verbal definitions and bodily expressions, but I felt Yamashima sensei's techiniques like I was 'fallen in jelly and struglling to get out of it'. Another participant felt it like 'his attack itself has vanished'. I also felt lucky to feel 'the Bounce back as soon as you touch', which was thought that it's only in movies or manga. He spoke very silently but quick and long, made me very hard to interpret, but he always emphasized 'the control from your center.'
아이고 씨와(with Aigo-san)
고노 씨와(with Kohno-san)
2년만에 만난 치요다구 합기회 회원들도 반가웠는데, 특히 아이고 씨와 고노 씨에게서 많은 조언을 얻어 그간 생각해오던 것들을 좀 더 실체화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이 계속 되길 바란다. Very glad to see the students of Chiyodaku Aikikai in 2 years, especially I got many hints from Aigo-san and Kohno-san, very helpful for substantialization of what I was seeking. I really hope we can seek the path longer together.
* * * 후기를 쓸 때마다 최대한 객관적인 어휘를 사용하려고 해도 자신의 경험한 선생의 기술을 표현하는데 주관적인 어휘가 사용될 수 밖에 없어 곤란할 때가 있다. '드래곤볼'의 스카우터가 실제로 있다면야 상당히 편하겠지만. Everytime I report, It's very hard to have it 'objectified' that I experienced. I really need a 'scouter' in 'Dragon-Ball'.
결론; 역시나 '마인 부'였고, '부드럽게 날 죽였다'.(<-사실 이번 후기는 이 한 문장만 쓰고 말려고 했음.) Conclusion; Yup, he was 'Majin Boo', 'killing me softly'.( <- Frankly, this was the only sentence that I wanted to say.) * * * 언제나 제자들을 위해주시는 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I give Yoon sensei my deepest respect and appreciation for his love to students. * * * 세미나 동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음. -> http://blog.daum.net/oskorea You can find the seminar clip here. -> http://blog.daum.net/oskorea
1번을 만나도 오랜 친구인 듯한 사람이 있고, 몇 년을 만나도 서먹서먹한 사람이 있다. Someone becomes a up close and personal friend with just a first shot, and there's also the other one who'll still be a stranger even knowing him so long.
후레아이숙 숙장인 이시바시 료이치 선생은 내게 전자에 해당한다. 어제 선생과의 두 번째이자 1년 반 만의 만남을 가졌다. 선생은 이번에 지벡의 사장인 모리시게 씨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모리시게 씨와도 역시 두 번째 만남. ISHIBASHI Ryoichi sensei, the Jukucho of Fureai-Juku is the former. I had the second meeting since 1 1/2 years ago. He came with Mr. Morishige, the owner of Xebec.
오전과 오후 두 차례의 수련 동안 선생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그대로 익히고 흡수하고자 노력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왜 몸이 안따라주는 건지.. 52세의 노친네의 움직임을 말이다. I tried to absorb everything I could see and feel from his movement during the morning and evening classes. But my body couldn't keep up with my brain.. and the 52-year old sensei.
선생에게 잘 보였던 덕분인지(?) 참으로 많이도 던져졌는데, 거의 100회를 상회하는 듯 하다. 지켜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아주 맘 놓고 패대기를 치더라'고. 내 스스로도 논스톱으로 던져지면서 중간에 선생의 눈빛이 변하는 걸 보고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넉다운. 그 당시를 찍은 영상을 정말 보고 싶다. I was so honored(?) to be thrown over 100 times by him. The other students told;'He was really enjoying throwing and smashing you down'. I also saw he was changing while I was being non-stop-thrown, and thought 'I mustn't be here'. And knock-out. I really want to watch the movie shot at the time.
이시바시 선생은 당신의 스승이셨던 故야마구치 세이고 선생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졌음을 대화하면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야마구치 선생이 하셨던 그대로를 보존하고, 왜 그런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은 좋은 귀감이 될만 하다. 후레아이숙의 게시판에 자주 방문하여 선생의 글을 읽고 있는데 좋은 글들이 매우 많다. Ishibashi sensei is very proud of his being studens of the late YAMAGUCHI Seigo sensei, I could feel it again having a talk with him. He wants to keep what he was taught exactly, and still is studying why his sensei did what he did. I regularly visit the website of Fureai-juku, his articles are very worth to read.
6월에는 야마시마 타케시 선생을 위시한 야마구치 선생 계열의 수련자들이 대거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번 수련을 놓치고 후회하고 계신 분들, 6월은 절대 놓치지 않으시길 빈다. In June, Yamaguchi style Aikidokas including YAMASHIMA Takeshi sensei will visit Korea and it'll be a big event. You, who regrets not attending the classes, have an another chance. Don't miss it.
제13회 전국합기도(Aikido)연무대회 및 강습회가 9월 1일부터 9월 2일까지 양일간 치러졌습니다.
특히 이번 강습회에서는 97년 제1회 세계연무대회 이후 10년만에 고바야시 야스오 8단 선생과 아라이 토시유키 7단 선생께서 총 26명의 일본측 참가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주말 양일간 4회의 클래스를 각각 2회씩 나누어 선생님들께서 지도하셨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넉넉하고 푸근한 고바야시 선생의 지도와,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얼음장처럼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아라이 선생의 지도는 많은 대조를 이루면서도 대회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일요일 오전에는 두 분 선생님과 윤대현 관장님 세 분을 모시고 대규모 승단심사가 치러졌습니다. 심사의 총평에서 한국의 수준이 일본에 결코 떨어지지 않음을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이번 심사에서는 윤대현 관장님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4단 유현상 씨가 배출되었습니다.
강습회 종료 후에 치러진 연무대회에서 저는 2명의 여성 수련생과 함께 고바야시 선생의 우케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작년 전일본연무대회 참가시 선생님의 우케를 하지 못했던 한을 풀게 되었습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기에 전심전력으로 고바야시 선생님께 다가갔고, 그 비참한 종말은 위 동영상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어쨌든 위 연무 덕분에 저는 모두에게 웃음을 전한 스타(?)가 되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인천공항에서 선생님들을 마중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공항 입국장에서 선생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중년남성이 어깨에 챔피언 벨트를 당당히 두르고 나왔습니다. 그의 등에는 자신의 수련무도의 로고가 크게 박혀있습니다. 그 뒤에는 또다른 백인남성이 역시 챔피언 벨트를 두르고 따라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쪽 계통에서는 나름 유명한 중년의 챔피언이 공항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쳐다보았습니다. 1시간 후 일본측 방문단과 입국장으로 빠져 나오는 고바야시 선생과 아라이 선생의 모습은 '동네 할아버지'였습니다. 특히 실례되는 발언입니다만, 아라이 선생님의 복장은 염소턱수염과 어울려 거의 노숙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심플했습니다. (이후 강습회에서의 아라이 선생님의 복장은 깔끔한 댄디스타일로 변했습니다.) 서로 면식이 없으면 그저 스쳐지나칠 평범함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선생들께서 도복을 입는 순간 마치 몸집이 커져보이고 위엄을 갖춘 모습으로 변모하십니다. 또한 세월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전혀 쇠퇴하지 않는 기술의 경지에 존경의 마음을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선생님들을 닮고픕니다. 제가 만 71세가 되었을 때 올해 뵈었던 고바야시 선생님의 모습과 닮아있다면 저는 참 행복할 겁니다.
2월 21일부터 3월 3일까지 11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첫 출근을 하니, 돌 세례가 반겨줍니다. 휴가 당일 공항으로 향하던 중에도 도로에서 불타는 차량을 2대 목격하기도 한데다, 휴가 중에 동티모르 현지의 치안상황이 더 악화되었다는 뉴스를 Bali에서 접한 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상대적으로 평온했던 제 관할구역인 Becora마저 이제는 무법천지로 변했습니다.
아침부터 신고를 받고 Taibesi Market에 이동하니 길이 모두 돌이나 나뭇가지로 막혀있습니다. 진입하자마자 바로 차량에 돌이 날아왔습니다. 포루투갈 FPU를 호출한 후 바리케이드를 치우자마자, 1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시 싸움이 났다는 신고. 마을을 접수하려는 갱단 Sacred Heart와 이를 거부하는 젊은 주민들간의 싸움입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운집해있던 이들이 달아납니다. 멀리서 쏴보라며 놀려대는 갱단멤버에게 손가락총을 겨눴더니 놀라 도망갑니다. UNPOL들이 모두 미온적인 사람들만 있다고 착각했나 봅니다.
Valide 지역을 지나치려니 Dili 경찰서 unit과 뉴질랜드 군인들이 역시 돌무더기와 불타는 타이어들로 가득한 도로를 치우고 있습니다. 지나가자마자 ‘팍’하는 소리가 나기에 뒤를 돌아봤더니 차량 뒷유리창이 깨져있습니다. 즉시 차량을 후진시킨 후, 필리핀인 동료와 함께 총을 장전한 뒤 차에서 뛰쳐나와 용의자를 뒤쫓는, 마치 액션영화와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1주일 즈음 전부터 수도 Dili 대부분의 지역에서 하루 종일 이런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 * *
12일간의 휴가 중에 한국에는 돌아가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머물렀습니다. 인도네시아 수도 Jakarta에 가서 다시 Bekasi로 이동, Kobayshi Dojo계열의 Ben’s Dojo Aikido를 방문하여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수련했습니다. Koyanagi 선생이 도장을 방문하여 지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동티모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발리, 다시 자카르타, 또다시 차를 타고 베카시로 간 것입니다. 휴가 당일 아침까지 이틀간 밤샘근무를 한지라 자카르타로 향하기 전 공항에서 조금이나마 컨디션을 회복하자는 절박한 심정에 Reflexology(발마사지)를 받았는데 아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압 등으로 아파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베카시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금요일 저녁수련을 위해 도장으로 향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수련은 오전 10시에 행해졌고, 일요일은 유단자 특별수련이었습니다.
베카시의 Tarman Galaxy에 있는 식당 2층에 위치한 Ben’s Dojo Aikido는 도장장 Benny Agus씨와 부인 Cesillia가 함께 운영하는 곳입니다. 베니씨는 17년간 아이키도를 수련했다고 합니다. 도장에 들어서니 이미 와있던 고야나기 선생(얼마 전 5단으로 승단했습니다.)이 반가이 맞아줍니다. 5년여 만의 만남입니다만, 전혀 어색한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검장 무기술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도장장 베니씨를 포함하여 인도네시아에 검장술을 지도한지 이제 2년여 밖에 되지 않아 모두 어색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검(Katana)의 이미지와 인도네시아인이 생각하는 검(Machete, 정글도)의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검술의 이치를 설명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고야나기 선생의 말. 결국 3일간 고야나기 선생의 조수 역할을 맡았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고야나기 선생과 1층에서 대화를 나누며 현지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다음날 저녁에 베니씨의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부자들이 사는 고급주택단지였습니다. 경비원이 단지입구를 지키고, 으리으리한 2층집에 뒷마당에는 분수까지 있습니다. 그곳의 게스트룸에서 묵던 고야나기 선생과 함께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만, 사실 베니씨는 주식으로 큰 돈을 버는 듯 했습니다.
일요일 유단자 수련이 끝나고 현지 수련생의 2단 승단심사가 있었습니다. 또한 베니씨의 4단증, 부인 세실리아씨의 초단증 수여식도 있었습니다.
고야나기 선생과 동티모르의 상황과 아이키도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왜 동티모르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비행기를 타고 수련하러 왔냐’는 화제에는 그저 ‘즐거우니까’라는 답변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발리에 돌아와 1주일 정도 묵는 동안에 한 것은 발리 중심가를 걸어서 돌아다니며 그간 필요했던 물품을 사고 지리를 익히거나, 호텔의 풀장에서 온종일 수영을 하거나, DVD를 왕창 사서 본 것, 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발리식으로 수저 안쓰고 손으로 밥먹고 현지에서 사귄 친구들과 노닥거린 것 밖에 없습니다. 제가 묵었던 Bali Matahari 호텔에는 마침 일본의 대학 방학시즌인지라 대부분의 투숙객이 일본인들이었습니다. 거리를 나가봐도 70%이상은 일본인. 저는 외국에 나와서 처음으로 제가 평균적인 한국인의 얼굴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대부분 열에 아홉은 저를 일본인으로 보고, 그 다음으로 중국인, 심지어 캄보디아인으로까지 생각하는 걸 보고는 놀랐습니다. 현지인들이 한국인을 못 알아보냐면 그것도 아니고. 나중에는 한국인이라고 자꾸 되풀이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면 일본어, 중국어에는 중국어로 답했습니다. 캄보디아어는 전혀 모르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만.
호텔에 묵은 첫날 풀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자니 발리의 평온함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커플끼리 여행 온 일본인 대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한 커플은 제가 고다이라(Kodaira)에 자주 간다고 하니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미샤쿠지(KamiShakujii)에서 왔다며 마치 동향사람을 만났다는 듯 반깁니다. 다른 커플과 친하게 지냈는데, 남자는 도쿄대, 여자는 게이오대를 다니는 재원들입니다.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이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만, 결국 ‘문화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다’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제가 아이키도를 접하면서 일본의 문화, 또한 한일관계,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는 얘기를 해주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 한 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양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하면서, 자신의 중국인 친구 또한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한국어를 배우는 걸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들 또한 얼마 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제가 일본을 방문할 때 꼭 다시 만나자고 하기에 연락처를 교환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동티모르에 오면서 계속 머릿속에서 되뇌이게 된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세계인이다.’라는 역도산의 말. 그리고 ‘인종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지개를 이루어야 한다’던 스리랑카인 동료 Mahesh의 말. 한국에서, 동티모르에서, 일본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저는 각국의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저를 비롯한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아시아’의 이미지가 중국, 한국, 일본 정도의 북아시아에 국한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곳 동티모르에서 제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필리핀인들입니다. 같은 아시아인임에도 저는 필리핀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나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까 오해가 발생하고, 미움이 생겨납니다. 두려움을 감추려고 노려보는 상대에게 나 또한 두려워 거꾸로 노려보면 싸움이 발생합니다. 노려보는 상대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게 최선의 호신술 중의 하나라는 것을 저는 이곳에서 ‘느끼게’되었습니다.
p.s. 발리의 Kuta, Legian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아이키도 간판을 발견했습니다. Apache라는 유명한 레게바에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고, 바와 아이키도 도장을 겸하는 듯 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섰지만, 경영이 좋지 않아 문을 닫았다더군요. 고바야시 도장에서 이번에 은퇴한 직장인 수련생을 발리로 파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칸다 5단(전직 교사)이 될 듯.
p.s.2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얼굴을 아주 젊게 봅니다. 저를 보고 자카르타에서는 20살, 발리에서는 24살 아니냐고 하더군요. 슬라이드쇼 말미에 나오는 친구들 몇 살 같습니까? 20살 파릇파릇한 청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