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자로 올라온 고바야시 선생의 한국방문기입니다. 파트 1,2에 이르는 긴 글입니다. 앞으로도 본인의 글을 많이 번역하여 올려달라는 선생의 말씀에 따라, 이번 방문기를 번역합니다. 출처는 고바야시 선생의 블로그(http://shihan.exblog.jp/).
대한합기도회 강습회, 심사회 파트 1
大韓合気道會講習会、審査会 パート1 ← 원문은 여기에.
금년 여름은 바빴습니다. 8월의 오봉(일본의 추석)의 시기에 친족이 사망하여, 당일치기로 이와테현 이치세키(岩手県 一関)에 갔습니다. 2일 후에는 캐나다 캘거리 아이키카이의 30주년 기념강습회와 축하회에 참가하여 무사히 종료하였습니다. 귀국하여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홋카이도의 시라타키무라(北海道 白滝村)를 방문하여, 핫사무 도장(発寒道場)에서 수련했습니다. 도쿄에 돌아와 2일 수에는 나리타에서 1박하여 9월 3일~7일까지 4박 5일로 한국의 수도 서울에 가서, 大韓合気道會의 강습회와 심사회에 참가했습니다.
고다이라 도장(小平道場) 2층의 자택은 무더위로 큰일이었습니다만, 여신님의 분위기는 초저기압입니다. 별 수 없습니다, 이번 달로 74세입니다. '나이를 생각하세요'라며, 입장을 바꿔보면 저라도 화가 나겠지요. 일, 일 하고 중얼거리며 도망치듯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마중하러 윤 사범, 부인인 미애 씨, 경찰관인 성주환 지도원이 나와주었습니다. 윤 사범의 부인은 '서울은 3일간, 태풍으로 강한 바람과 비가 왔습니다. 서울시는 각지에 피해도 나왔습니다. 비행기가 뜨지 않아 고바야시 선생이 오시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선생이 오시니 개었네요.'라며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참가자는 저, 히가시야마토시 아이키카이(東大和市合気会)의 사와다 아키라(沢田朗) 도장장, 그리고 카사하라 유지(笠原祐二) 지도원으로, 이번에는 불과 3명입니다.
숙박한 호텔은 서울의 중심가에 있어 일본으로 말하자면 나가타쵸(永田町) 같은 곳입니다. 국회의사당이 있고, 최근 완성된 '세븐스타 호텔'이란 이름의 비즈니스 호텔입니다. 걸어서 1분 정도의 곳에 한국 여당인 한나라당 본부가 있어, 경찰관이 많이 경비하고 있어 치안은 최고입니다. 낮에는 한강변의 식당에서 장어 요리, 밤에는 유명한 불고기로 환대 받았습니다. 호텔에 9시경 돌아왔습니다만 좀 더 마시고 싶어 부근을 탐색, 아메리칸 스타일의 맥주집을 찾아 내일부터의 연무회, 강습회의 활력을 보충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붙이며 마셨습니다.
사진 : 심사 풍경
토요일 9월 4일은 오후 1시 반 부터 심사로, 종료 후 연무대회가 실시되었습니다. 장소는 서울시내에 있는 YMCA의 도장으로 넓이는 다다미 150장, 거기에 150명 참가입니다. 한국에서의 合気道의 확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심사회는 년 1회이므로 모두 진지합니다. 수험자는 3단 3명, 2단 10명, 초단 20명 전원 남성입니다. 수험자의 연령을 보면 20대 후반부터 40세 정도까지 입니다. 전원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한국에서는 남자는 징병제도가 있기에 20세가 되면 군대에 소집됩니다. 군대에서 단련되었기에 체격도 좋고, 튼실한 몸놀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심사회 참석은 3년 만으로, 수험생도 상당히 수련을 쌓았다고 생각됩니다. 수험자의 가슴에는 번호가 붙어있어 서류의 이름과 연무자를 확인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합기도회의 지도부원이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의 심사규정과 같은 기술을 출제합니다만, 한국어와 일본어 기술명을 동시에 불러주기에, 저희들도 알기 쉬워 심사회의 형식도 매우 궁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다다미 150장 넓이에 150명이 참가, 심사의 공간도 부족해져 버렸습니다. 체술(体術)은 같은 방향으로 던지고, 장`검(杖・剣)은 아무리 해도 간합(間合い)이 가까워져 버려, 과제로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해외 각국에서 심사원으로서 참석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의 대한합기도회의 각단의 심사수험자의 레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정말 기쁜 일입니다. 물론 전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여자 수험자가 없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여성의 아이키도 인구를 늘리는 것이 대한합기도회의 최대의 과제입니다.
연무회는 도장별로 2~3분 정도의 연무입니다. 처음은 경찰 클럽에서 일교운동(一教運動), 사방운동(四方運動), 노젓기운동(舟漕ぎ運動)을 경찰관답게 구령을 붙여 활기차게 시작했습니다. 각 지방, 도장의 특색이 드러나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여성 참가자는 8명이었습니다. 윤 선생, 부인, 그리고 7월에 군대를 제대한 2명의 아들들에 의한 가족연무는 활기차게 던지는 부인, 숨을 헐떡이며 우케를 받는 윤 사범에 모두들 크게 즐거워 하며 박수가 터졌습니다.
3년 만에 윤 사범의 아들과 만났습니다만, 군대에서 단련된 신체는 정말로 강인해졌습니다. 윤 사범, 부인은 장남에게 도장을 이어줄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을 마치면 치바의 국제무도대학에 입학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키도의 전문가가 될 의지를 보이지 않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본 조인 저희 3명은 카사하라 유지 지도원이 190㎝의 신장을 이용한 큰 연무, 히가시야마토 시 아이키카이 사와다 아키라 도장장은 단도잡기(短刀取り)를 빠른 움직임과 기본 그대로의 강한 움직임으로 한국분들을 끌어들여, 감탄시켰습니다. 한국에서는 나이를 햇수로 셉니다. 76세인 사람이 연무하는 일은 한국무도계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합니다. 저는 이런 이유만으로 성대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스스로는 젊다, 젊다고 생각합니다만 주변으로부터는 늙은이 취급을 받습니다. 이 말에 응석부리지 않도록 더더욱 활기차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무회 후의 축하회는 지하 1층의 큰 냄비요리집으로, 먹고 마시는 양이 맘대로인 가게입니다. 150명이 그대로 전원 이번 강습회를 위해 만든 티셔츠를 입고 참가한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사진 : 저(좌측)과 윤 선생이 모델입니다.
한국도 맘대로 먹고 마시는 시간은 2시간으로 정해져있습니다. 선생님, 3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하더니 19시 반 정각에 시작했습니다. 윤 사범의 부인이 기운 차게 구분지어, 이번의 3단 승단자는 맥주, 소주를 섞은 술을 컵으로 3잔, 2단은 2잔, 초단은 1잔으로 제가 따르도록 하여 강제로 마시도록 했습니다. 쌓여진 소주병을 보아주십시오. 요리의 수도 많고 대단히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카사하라 지도원도 넉살 좋게 마셔, 일본 남자도 여기 있다며 연무회 이상으로 연회를 고조시켰습니다. 카사하라의 이름은 대한합기도회 전원에게 기억되리라 생각합니다.
다음날은 강습회입니다. 오전 10시부터 11시 반의 수련. 점심식사 후 1시~3시 반의 수련, 그리고 4시~5시 반의 총 3회 치러졌습니다. 제1회째와 3회째는 저, 2회째는 사와다 7단이 지도했습니다. 도장이 한증막 지경이었습니만, 지방에서도 많이 참가하여, 모두 진지하게 수련에 임했습니다. 사와다 사범은 해외에서 지도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만, 심사에서 보여진 결점을 지적하면서 한 지도는 매우 호평이었습니다. 꼭 다음에도 지도를 부탁합니다.
저는 기본기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가르쳤습니다. 참가한 레벨이 가지각색이기에, 전원의 흥미를 끌 만한 수련을 지도했습니다. 이 무더위에 1시간 반의 수련 3회에는 정말로 전원이 탈진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흡수하겠다는 욕구로 눈이 빛나고 있기에, 또 내년이 기대됩니다.
파트 2에 계속
대한합기도회강습회, 심사회 파트 2
大韓合気道會講習会、審査会 パート2 ← 원문은 여기에.
대한합기도회와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合気道小林道場)의 교류는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 20주년 기념연무회가 1988년 5월에 현지의 도쿄도 고다이라시 종합체육관(東京都小平市総合体育館)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때 자매도장이었던 대만 타이페이시(台湾台北市)의 용산도장(龍山道場) 오금룡(呉金龍) 사범의 소개로 윤 사범의 도장이 참가하여 연무를 했습니다.
이 상황은 2007년 9월 12일의 블로그에 써있습니다. 읽지 않은 분은 읽어봐 주십시오.
2007年9月12日のブログへ 2007년 9월 12일의 블로그로
사진 : 북한과의 국경 근처
제가 지금까지 한국에 갈 때에는 매번 15명~20명의 학생들이 함께 갔기 때문에, 저도 윤 사범도 여러가지로 바빠서, 제대로 대화할 시간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번의 참가는 3명이었기에 윤 사범과 부인과 느긋하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윤 사범의 부인의 일본어가 현격히 능숙해져 일상회화에는 부자유스럽지 않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관광이나 호텔에서 도장까지의 이동, 식사 중에 윤 사범의 合気道 보급발전의 고생담이나 한국인의 무도에 대한 생각이 일본인과 상당히 다른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의 대부분의 무도인은 30세를 넘어 체력이 떨어지게 되면, 지도는 제자에게 맡기고 경영자가 된다고 합니다. 사람을 모으는 것과 단`급의 발행으로 경영에 철저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전문도장을 열 때, 1주일 간, 매일 몇 번이고 수련시간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수련하러 오는 사람이 납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도전문의 도장에서도 매일 몇 번이고 수련시간이 있는 것은, 상당히 큰 도시의 중심에 있는 도장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 교외의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에서도 전문도장은 주 3~4회. 하루에 한 번의 수련을 윤 사범은 한국에서는 믿지 못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진 : 윤 사범 내외와 성 지도원
윤 사범의 대단함은 자신이 한국무도계에서 나름의 지위와 명예를 구축한 것을 모두 버리고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의 내제자 수련(住み込み修業)에 쳐들어 온 것입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제로(0)부터의 출발입니다.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 지도부는 윤 사범을 전면적으로 응원했습니다. 지도원의 파견, 윤 사범, 제자들의 고바야시 도장의 내제자 수련의 허가, 이와이 합숙(岩井合宿) 참가를 위한 경제적 원조 역시 가능한한 지원했습니다.
윤 사범은 당시, 한국무도의 실력자였기에, 몇 주 정도 아이키도 수련을 하면 간단히 어느 정도의 기술은 습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윤 사범의 지금까지 배운 무술에서는 기술은 물론입니다만, 체력, 기력, 힘 그리고 스피드에서 상대를 압도해 왔습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아이키도의 기술을 하겠다고 하면, 전혀, 기술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키도의 몸놀림이나 기술은 보면 간단히 가능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용을 쓰면 용을 쓸수록 아이키도의 기술은 향상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체험한 무도와 아이키도는 이질적인 것임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키도의 기술의 어려움 및 기술의 다양함에 머리를 감싸쥐었다고 합니다.
사진 : 북한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일본제 기관차
노력의 결과, 아이키도 초단을 취득하여 대한합기도회의 제1보를 내딛었습니다. 윤 사범이 한국의 합기도에서 일본의 아이키도로 전향한 것은 앞에서도 썼습니다. 윤 사범이 조직하고 있던 삼산무술연합회(三山武術連合会)는 붕괴, 분열되어 버렸습니다. 아주 약간의 도장만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윤 씨의 부인은 그때까지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였으나, 일본의 아이키도로 전향하고부터, 정말로 경제적으로 곤란해져, 3년 동안은 예전의 삼산무술연합회로 돌아가자고 계속 말했습니다. 2명의 자식을 포함 경제적으로 쫓겨, 별장이나 집을 팔게 되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윤 사범의 결의가 단단했기에, 별 수 없이 자신도 아이키도의 수련을 시작하고서야 아이키도의 좋은 점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이 몇 년이고 대한합기도회의 사람들을 위해 지도원 파견 및 이와이 합숙의 참가에 '결연기금(むすび基金)에 의한 경제원조가 얼마나 대한합기도회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며 마음 속 깊이 감사를 표해주었습니다.
무도의 평가는 실력보다도 단위로 결정되는 일이 세간에서는 일반적입니다. 윤 사범은 한국의 합기도에서는 6단이었으나 일본의 아이키도에서는 초단부터 스타트입니다. 한국의 합기도의 도장의 선생은 5단, 6단의 선생이 당연한 식입니다. 일본의 아이키도는 다르다고 말해도 초단의 윤 사범의 도장에서는 학생이 그리 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윤 사범의 노력으로 아이키도의 회원은 조금씩 늘어 3년, 5년이 지나 윤 사범도 승단하여 일본의 아이키도가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세계에서도 똑같지만 흉내내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는 일본에서 아이키도를 배워 XX단을 취득했다. 내 쪽이 실력, 기술이 낫고, 진짜 아이키도다, 윤 사범의 아이키도는 가짜다'고 한국인들 사이에 말하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에서는 윤 사범의 대한합기도회를 아이키카이(合気会)의 승인단체로서 승인토록 하고, 또한 국제합기도연맹(国際合気道連盟)에 한국의 단체로서 가입하여 대처하였습니다.
현재는 그러한 사람들은 어딘가 사라져버린 듯 합니다. 또 하나는 인터넷 상에서의 중상비방입니다. 이에 대해 윤 사범은 하나하나 회답, 반론하여 조용히 만들었습니다.
윤 사범은 자신을 갖고 '현재는 대한합기도회에는 일절 걱정이나 문제가 없습니다.''선생님, 20년 걸렸습니다만, 한국무도계에 아이키도는 일본인인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植芝盛平翁先生)이 창시한 무도임을 인식시켰습니다.'하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합기도의 도장이 '대한합기도회의 산하에 들어가고 싶다'든가 '협력하여 활동하고 싶다'며 머리를 숙이고 온다고 하지만, 신중하게 대처하는 듯 합니다. 분명 '현재의 합기도의 단을 인정해달라'든가, '내가 회장이고 윤 사범은 부회장' 등의 어리석은 말을 하는 듯 합니다만, 그에 대해 일체 타협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있다며 힘 있게 말했습니다.
대한합기도회와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의 강한 연대를 이번 방문에서 저는 느꼈습니다. 그것은, 이 강습회 기념 티셔츠에 나타나 있습니다. 기념 파티에서 전원이 입어주었습니다.

이 티셔츠를 보시면서 블로그를 마무리합니다. 다음 번에, 한국에 제가 수련을 갈 때에 꼭 모두들 참가해 주십시오.
대한합기도회 강습회, 심사회 파트 1
大韓合気道會講習会、審査会 パート1 ← 원문은 여기에.
금년 여름은 바빴습니다. 8월의 오봉(일본의 추석)의 시기에 친족이 사망하여, 당일치기로 이와테현 이치세키(岩手県 一関)에 갔습니다. 2일 후에는 캐나다 캘거리 아이키카이의 30주년 기념강습회와 축하회에 참가하여 무사히 종료하였습니다. 귀국하여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홋카이도의 시라타키무라(北海道 白滝村)를 방문하여, 핫사무 도장(発寒道場)에서 수련했습니다. 도쿄에 돌아와 2일 수에는 나리타에서 1박하여 9월 3일~7일까지 4박 5일로 한국의 수도 서울에 가서, 大韓合気道會의 강습회와 심사회에 참가했습니다.
고다이라 도장(小平道場) 2층의 자택은 무더위로 큰일이었습니다만, 여신님의 분위기는 초저기압입니다. 별 수 없습니다, 이번 달로 74세입니다. '나이를 생각하세요'라며, 입장을 바꿔보면 저라도 화가 나겠지요. 일, 일 하고 중얼거리며 도망치듯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마중하러 윤 사범, 부인인 미애 씨, 경찰관인 성주환 지도원이 나와주었습니다. 윤 사범의 부인은 '서울은 3일간, 태풍으로 강한 바람과 비가 왔습니다. 서울시는 각지에 피해도 나왔습니다. 비행기가 뜨지 않아 고바야시 선생이 오시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선생이 오시니 개었네요.'라며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참가자는 저, 히가시야마토시 아이키카이(東大和市合気会)의 사와다 아키라(沢田朗) 도장장, 그리고 카사하라 유지(笠原祐二) 지도원으로, 이번에는 불과 3명입니다. 숙박한 호텔은 서울의 중심가에 있어 일본으로 말하자면 나가타쵸(永田町) 같은 곳입니다. 국회의사당이 있고, 최근 완성된 '세븐스타 호텔'이란 이름의 비즈니스 호텔입니다. 걸어서 1분 정도의 곳에 한국 여당인 한나라당 본부가 있어, 경찰관이 많이 경비하고 있어 치안은 최고입니다. 낮에는 한강변의 식당에서 장어 요리, 밤에는 유명한 불고기로 환대 받았습니다. 호텔에 9시경 돌아왔습니다만 좀 더 마시고 싶어 부근을 탐색, 아메리칸 스타일의 맥주집을 찾아 내일부터의 연무회, 강습회의 활력을 보충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붙이며 마셨습니다.
사진 : 심사 풍경토요일 9월 4일은 오후 1시 반 부터 심사로, 종료 후 연무대회가 실시되었습니다. 장소는 서울시내에 있는 YMCA의 도장으로 넓이는 다다미 150장, 거기에 150명 참가입니다. 한국에서의 合気道의 확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심사회는 년 1회이므로 모두 진지합니다. 수험자는 3단 3명, 2단 10명, 초단 20명 전원 남성입니다. 수험자의 연령을 보면 20대 후반부터 40세 정도까지 입니다. 전원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한국에서는 남자는 징병제도가 있기에 20세가 되면 군대에 소집됩니다. 군대에서 단련되었기에 체격도 좋고, 튼실한 몸놀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심사회 참석은 3년 만으로, 수험생도 상당히 수련을 쌓았다고 생각됩니다. 수험자의 가슴에는 번호가 붙어있어 서류의 이름과 연무자를 확인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합기도회의 지도부원이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의 심사규정과 같은 기술을 출제합니다만, 한국어와 일본어 기술명을 동시에 불러주기에, 저희들도 알기 쉬워 심사회의 형식도 매우 궁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다다미 150장 넓이에 150명이 참가, 심사의 공간도 부족해져 버렸습니다. 체술(体術)은 같은 방향으로 던지고, 장`검(杖・剣)은 아무리 해도 간합(間合い)이 가까워져 버려, 과제로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해외 각국에서 심사원으로서 참석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의 대한합기도회의 각단의 심사수험자의 레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정말 기쁜 일입니다. 물론 전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여자 수험자가 없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여성의 아이키도 인구를 늘리는 것이 대한합기도회의 최대의 과제입니다.
연무회는 도장별로 2~3분 정도의 연무입니다. 처음은 경찰 클럽에서 일교운동(一教運動), 사방운동(四方運動), 노젓기운동(舟漕ぎ運動)을 경찰관답게 구령을 붙여 활기차게 시작했습니다. 각 지방, 도장의 특색이 드러나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여성 참가자는 8명이었습니다. 윤 선생, 부인, 그리고 7월에 군대를 제대한 2명의 아들들에 의한 가족연무는 활기차게 던지는 부인, 숨을 헐떡이며 우케를 받는 윤 사범에 모두들 크게 즐거워 하며 박수가 터졌습니다.
3년 만에 윤 사범의 아들과 만났습니다만, 군대에서 단련된 신체는 정말로 강인해졌습니다. 윤 사범, 부인은 장남에게 도장을 이어줄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을 마치면 치바의 국제무도대학에 입학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키도의 전문가가 될 의지를 보이지 않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본 조인 저희 3명은 카사하라 유지 지도원이 190㎝의 신장을 이용한 큰 연무, 히가시야마토 시 아이키카이 사와다 아키라 도장장은 단도잡기(短刀取り)를 빠른 움직임과 기본 그대로의 강한 움직임으로 한국분들을 끌어들여, 감탄시켰습니다. 한국에서는 나이를 햇수로 셉니다. 76세인 사람이 연무하는 일은 한국무도계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합니다. 저는 이런 이유만으로 성대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스스로는 젊다, 젊다고 생각합니다만 주변으로부터는 늙은이 취급을 받습니다. 이 말에 응석부리지 않도록 더더욱 활기차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무회 후의 축하회는 지하 1층의 큰 냄비요리집으로, 먹고 마시는 양이 맘대로인 가게입니다. 150명이 그대로 전원 이번 강습회를 위해 만든 티셔츠를 입고 참가한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사진 : 저(좌측)과 윤 선생이 모델입니다.한국도 맘대로 먹고 마시는 시간은 2시간으로 정해져있습니다. 선생님, 3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하더니 19시 반 정각에 시작했습니다. 윤 사범의 부인이 기운 차게 구분지어, 이번의 3단 승단자는 맥주, 소주를 섞은 술을 컵으로 3잔, 2단은 2잔, 초단은 1잔으로 제가 따르도록 하여 강제로 마시도록 했습니다. 쌓여진 소주병을 보아주십시오. 요리의 수도 많고 대단히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카사하라 지도원도 넉살 좋게 마셔, 일본 남자도 여기 있다며 연무회 이상으로 연회를 고조시켰습니다. 카사하라의 이름은 대한합기도회 전원에게 기억되리라 생각합니다.
다음날은 강습회입니다. 오전 10시부터 11시 반의 수련. 점심식사 후 1시~3시 반의 수련, 그리고 4시~5시 반의 총 3회 치러졌습니다. 제1회째와 3회째는 저, 2회째는 사와다 7단이 지도했습니다. 도장이 한증막 지경이었습니만, 지방에서도 많이 참가하여, 모두 진지하게 수련에 임했습니다. 사와다 사범은 해외에서 지도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만, 심사에서 보여진 결점을 지적하면서 한 지도는 매우 호평이었습니다. 꼭 다음에도 지도를 부탁합니다.
저는 기본기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가르쳤습니다. 참가한 레벨이 가지각색이기에, 전원의 흥미를 끌 만한 수련을 지도했습니다. 이 무더위에 1시간 반의 수련 3회에는 정말로 전원이 탈진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흡수하겠다는 욕구로 눈이 빛나고 있기에, 또 내년이 기대됩니다.
파트 2에 계속
대한합기도회강습회, 심사회 파트 2
大韓合気道會講習会、審査会 パート2 ← 원문은 여기에.
대한합기도회와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合気道小林道場)의 교류는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 20주년 기념연무회가 1988년 5월에 현지의 도쿄도 고다이라시 종합체육관(東京都小平市総合体育館)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때 자매도장이었던 대만 타이페이시(台湾台北市)의 용산도장(龍山道場) 오금룡(呉金龍) 사범의 소개로 윤 사범의 도장이 참가하여 연무를 했습니다.
이 상황은 2007년 9월 12일의 블로그에 써있습니다. 읽지 않은 분은 읽어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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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북한과의 국경 근처제가 지금까지 한국에 갈 때에는 매번 15명~20명의 학생들이 함께 갔기 때문에, 저도 윤 사범도 여러가지로 바빠서, 제대로 대화할 시간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번의 참가는 3명이었기에 윤 사범과 부인과 느긋하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윤 사범의 부인의 일본어가 현격히 능숙해져 일상회화에는 부자유스럽지 않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관광이나 호텔에서 도장까지의 이동, 식사 중에 윤 사범의 合気道 보급발전의 고생담이나 한국인의 무도에 대한 생각이 일본인과 상당히 다른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의 대부분의 무도인은 30세를 넘어 체력이 떨어지게 되면, 지도는 제자에게 맡기고 경영자가 된다고 합니다. 사람을 모으는 것과 단`급의 발행으로 경영에 철저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전문도장을 열 때, 1주일 간, 매일 몇 번이고 수련시간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수련하러 오는 사람이 납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도전문의 도장에서도 매일 몇 번이고 수련시간이 있는 것은, 상당히 큰 도시의 중심에 있는 도장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 교외의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에서도 전문도장은 주 3~4회. 하루에 한 번의 수련을 윤 사범은 한국에서는 믿지 못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진 : 윤 사범 내외와 성 지도원윤 사범의 대단함은 자신이 한국무도계에서 나름의 지위와 명예를 구축한 것을 모두 버리고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의 내제자 수련(住み込み修業)에 쳐들어 온 것입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제로(0)부터의 출발입니다.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 지도부는 윤 사범을 전면적으로 응원했습니다. 지도원의 파견, 윤 사범, 제자들의 고바야시 도장의 내제자 수련의 허가, 이와이 합숙(岩井合宿) 참가를 위한 경제적 원조 역시 가능한한 지원했습니다.
윤 사범은 당시, 한국무도의 실력자였기에, 몇 주 정도 아이키도 수련을 하면 간단히 어느 정도의 기술은 습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윤 사범의 지금까지 배운 무술에서는 기술은 물론입니다만, 체력, 기력, 힘 그리고 스피드에서 상대를 압도해 왔습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아이키도의 기술을 하겠다고 하면, 전혀, 기술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키도의 몸놀림이나 기술은 보면 간단히 가능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용을 쓰면 용을 쓸수록 아이키도의 기술은 향상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체험한 무도와 아이키도는 이질적인 것임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키도의 기술의 어려움 및 기술의 다양함에 머리를 감싸쥐었다고 합니다.
사진 : 북한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일본제 기관차노력의 결과, 아이키도 초단을 취득하여 대한합기도회의 제1보를 내딛었습니다. 윤 사범이 한국의 합기도에서 일본의 아이키도로 전향한 것은 앞에서도 썼습니다. 윤 사범이 조직하고 있던 삼산무술연합회(三山武術連合会)는 붕괴, 분열되어 버렸습니다. 아주 약간의 도장만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윤 씨의 부인은 그때까지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였으나, 일본의 아이키도로 전향하고부터, 정말로 경제적으로 곤란해져, 3년 동안은 예전의 삼산무술연합회로 돌아가자고 계속 말했습니다. 2명의 자식을 포함 경제적으로 쫓겨, 별장이나 집을 팔게 되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윤 사범의 결의가 단단했기에, 별 수 없이 자신도 아이키도의 수련을 시작하고서야 아이키도의 좋은 점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이 몇 년이고 대한합기도회의 사람들을 위해 지도원 파견 및 이와이 합숙의 참가에 '결연기금(むすび基金)에 의한 경제원조가 얼마나 대한합기도회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며 마음 속 깊이 감사를 표해주었습니다.
무도의 평가는 실력보다도 단위로 결정되는 일이 세간에서는 일반적입니다. 윤 사범은 한국의 합기도에서는 6단이었으나 일본의 아이키도에서는 초단부터 스타트입니다. 한국의 합기도의 도장의 선생은 5단, 6단의 선생이 당연한 식입니다. 일본의 아이키도는 다르다고 말해도 초단의 윤 사범의 도장에서는 학생이 그리 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윤 사범의 노력으로 아이키도의 회원은 조금씩 늘어 3년, 5년이 지나 윤 사범도 승단하여 일본의 아이키도가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어떤 세계에서도 똑같지만 흉내내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는 일본에서 아이키도를 배워 XX단을 취득했다. 내 쪽이 실력, 기술이 낫고, 진짜 아이키도다, 윤 사범의 아이키도는 가짜다'고 한국인들 사이에 말하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에서는 윤 사범의 대한합기도회를 아이키카이(合気会)의 승인단체로서 승인토록 하고, 또한 국제합기도연맹(国際合気道連盟)에 한국의 단체로서 가입하여 대처하였습니다.
현재는 그러한 사람들은 어딘가 사라져버린 듯 합니다. 또 하나는 인터넷 상에서의 중상비방입니다. 이에 대해 윤 사범은 하나하나 회답, 반론하여 조용히 만들었습니다.
윤 사범은 자신을 갖고 '현재는 대한합기도회에는 일절 걱정이나 문제가 없습니다.''선생님, 20년 걸렸습니다만, 한국무도계에 아이키도는 일본인인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植芝盛平翁先生)이 창시한 무도임을 인식시켰습니다.'하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합기도의 도장이 '대한합기도회의 산하에 들어가고 싶다'든가 '협력하여 활동하고 싶다'며 머리를 숙이고 온다고 하지만, 신중하게 대처하는 듯 합니다. 분명 '현재의 합기도의 단을 인정해달라'든가, '내가 회장이고 윤 사범은 부회장' 등의 어리석은 말을 하는 듯 합니다만, 그에 대해 일체 타협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있다며 힘 있게 말했습니다.
대한합기도회와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의 강한 연대를 이번 방문에서 저는 느꼈습니다. 그것은, 이 강습회 기념 티셔츠에 나타나 있습니다. 기념 파티에서 전원이 입어주었습니다.

이 티셔츠를 보시면서 블로그를 마무리합니다. 다음 번에, 한국에 제가 수련을 갈 때에 꼭 모두들 참가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