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al & Error/20102010/09/24 13:35
9월 23일자로 올라온 고바야시 선생의 한국방문기입니다. 파트 1,2에 이르는 긴 글입니다. 앞으로도 본인의 글을 많이 번역하여 올려달라는 선생의 말씀에 따라, 이번 방문기를 번역합니다. 출처는 고바야시 선생의 블로그(http://shihan.exblog.jp/).


대한합기도회 강습회, 심사회 파트 1
大韓合気道會講習会、審査会 パート1 ← 원문은 여기에.

 금년 여름은 바빴습니다. 8월의 오봉(일본의 추석)의 시기에 친족이 사망하여, 당일치기로 이와테현 이치세키(岩手県 一関)에 갔습니다. 2일 후에는 캐나다 캘거리 아이키카이의 30주년 기념강습회와 축하회에 참가하여 무사히 종료하였습니다. 귀국하여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홋카이도의 시라타키무라(北海道 白滝村)를 방문하여, 핫사무 도장(発寒道場)에서 수련했습니다. 도쿄에 돌아와 2일 수에는 나리타에서 1박하여 9월 3일~7일까지 4박 5일로 한국의 수도 서울에 가서, 大韓合気道會의 강습회와 심사회에 참가했습니다.

 고다이라 도장(小平道場) 2층의 자택은 무더위로 큰일이었습니다만, 여신님의 분위기는 초저기압입니다. 별 수 없습니다, 이번 달로 74세입니다. '나이를 생각하세요'라며, 입장을 바꿔보면 저라도 화가 나겠지요. 일, 일 하고 중얼거리며 도망치듯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마중하러 윤 사범, 부인인 미애 씨, 경찰관인 성주환 지도원이 나와주었습니다. 윤 사범의 부인은 '서울은 3일간, 태풍으로 강한 바람과 비가 왔습니다. 서울시는 각지에 피해도 나왔습니다. 비행기가 뜨지 않아 고바야시 선생이 오시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선생이 오시니 개었네요.'라며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습니다. 일본에서의 참가자는 저, 히가시야마토시 아이키카이(東大和市合気会)의 사와다 아키라(沢田朗) 도장장, 그리고 카사하라 유지(笠原祐二) 지도원으로, 이번에는 불과 3명입니다.

 숙박한 호텔은 서울의 중심가에 있어 일본으로 말하자면 나가타쵸(永田町) 같은 곳입니다. 국회의사당이 있고, 최근 완성된 '세븐스타 호텔'이란 이름의 비즈니스 호텔입니다. 걸어서 1분 정도의 곳에 한국 여당인 한나라당 본부가 있어, 경찰관이 많이 경비하고 있어 치안은 최고입니다. 낮에는 한강변의 식당에서 장어 요리, 밤에는 유명한 불고기로 환대 받았습니다. 호텔에 9시경 돌아왔습니다만 좀 더 마시고 싶어 부근을 탐색, 아메리칸 스타일의 맥주집을 찾아 내일부터의 연무회, 강습회의 활력을 보충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붙이며 마셨습니다.

 사진 : 심사 풍경

  토요일 9월 4일은 오후 1시 반 부터 심사로, 종료 후 연무대회가 실시되었습니다. 장소는 서울시내에 있는 YMCA의 도장으로 넓이는  다다미 150장, 거기에 150명 참가입니다. 한국에서의 合気道의 확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심사회는 년 1회이므로 모두 진지합니다. 수험자는 3단 3명, 2단 10명, 초단 20명 전원 남성입니다. 수험자의 연령을 보면 20대 후반부터 40세 정도까지 입니다. 전원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한국에서는 남자는 징병제도가 있기에 20세가 되면 군대에 소집됩니다. 군대에서 단련되었기에 체격도 좋고, 튼실한 몸놀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심사회 참석은 3년 만으로, 수험생도 상당히 수련을 쌓았다고 생각됩니다. 수험자의 가슴에는 번호가 붙어있어 서류의 이름과 연무자를 확인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합기도회의 지도부원이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의 심사규정과 같은 기술을 출제합니다만, 한국어와 일본어 기술명을 동시에 불러주기에, 저희들도 알기 쉬워 심사회의 형식도 매우 궁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다다미 150장 넓이에 150명이 참가, 심사의 공간도 부족해져 버렸습니다. 체술(体術)은 같은 방향으로 던지고, 장`검(杖・剣)은 아무리 해도 간합(間合い)이 가까워져 버려, 과제로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해외 각국에서 심사원으로서 참석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의 대한합기도회의 각단의 심사수험자의 레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정말 기쁜 일입니다. 물론 전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여자 수험자가 없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여성의 아이키도 인구를 늘리는 것이 대한합기도회의 최대의 과제입니다.

 연무회는 도장별로 2~3분 정도의 연무입니다. 처음은 경찰 클럽에서 일교운동(一教運動), 사방운동(四方運動), 노젓기운동(舟漕ぎ運動)을 경찰관답게 구령을 붙여 활기차게 시작했습니다. 각 지방, 도장의 특색이 드러나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여성 참가자는 8명이었습니다. 윤 선생, 부인, 그리고 7월에 군대를 제대한 2명의 아들들에 의한 가족연무는 활기차게 던지는 부인, 숨을 헐떡이며 우케를 받는 윤 사범에 모두들 크게 즐거워 하며 박수가 터졌습니다.

 3년 만에 윤 사범의 아들과 만났습니다만, 군대에서 단련된 신체는 정말로 강인해졌습니다. 윤 사범, 부인은 장남에게 도장을 이어줄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을 마치면 치바의 국제무도대학에 입학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아이키도의 전문가가 될 의지를 보이지 않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본 조인 저희 3명은 카사하라 유지 지도원이 190㎝의 신장을 이용한 큰 연무, 히가시야마토 시 아이키카이 사와다 아키라 도장장은 단도잡기(短刀取り)를 빠른 움직임과 기본 그대로의 강한 움직임으로 한국분들을 끌어들여, 감탄시켰습니다. 한국에서는 나이를 햇수로 셉니다. 76세인 사람이 연무하는 일은 한국무도계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합니다. 저는 이런 이유만으로 성대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스스로는 젊다, 젊다고 생각합니다만 주변으로부터는 늙은이 취급을 받습니다. 이 말에 응석부리지 않도록 더더욱 활기차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무회 후의 축하회는 지하 1층의 큰 냄비요리집으로, 먹고 마시는 양이 맘대로인 가게입니다. 150명이 그대로 전원 이번 강습회를 위해 만든 티셔츠를 입고 참가한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사진 : 저(좌측)과 윤 선생이 모델입니다.

  한국도 맘대로 먹고 마시는 시간은 2시간으로 정해져있습니다. 선생님, 3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하더니 19시 반 정각에 시작했습니다. 윤 사범의 부인이 기운 차게 구분지어, 이번의 3단 승단자는 맥주, 소주를 섞은 술을 컵으로 3잔, 2단은 2잔, 초단은 1잔으로 제가 따르도록 하여 강제로 마시도록 했습니다. 쌓여진 소주병을 보아주십시오. 요리의 수도 많고 대단히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카사하라 지도원도 넉살 좋게 마셔, 일본 남자도 여기 있다며 연무회 이상으로 연회를 고조시켰습니다. 카사하라의 이름은 대한합기도회 전원에게 기억되리라 생각합니다.

 다음날은 강습회입니다. 오전 10시부터 11시 반의 수련. 점심식사 후 1시~3시 반의 수련, 그리고 4시~5시 반의 총 3회 치러졌습니다. 제1회째와 3회째는 저, 2회째는 사와다 7단이 지도했습니다. 도장이 한증막 지경이었습니만, 지방에서도 많이 참가하여, 모두 진지하게 수련에 임했습니다. 사와다 사범은 해외에서 지도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만, 심사에서 보여진 결점을 지적하면서 한 지도는 매우 호평이었습니다. 꼭 다음에도 지도를 부탁합니다.

 저는 기본기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가르쳤습니다. 참가한 레벨이 가지각색이기에, 전원의 흥미를 끌 만한 수련을 지도했습니다. 이 무더위에 1시간 반의 수련 3회에는 정말로 전원이 탈진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흡수하겠다는 욕구로 눈이 빛나고 있기에, 또 내년이 기대됩니다.

파트 2에 계속



대한합기도회강습회, 심사회 파트 2
大韓合気道會講習会、審査会 パート2 ← 원문은 여기에.

 대한합기도회와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合気道小林道場)의 교류는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 20주년 기념연무회가 1988년 5월에 현지의 도쿄도 고다이라시 종합체육관(東京都小平市総合体育館)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때 자매도장이었던 대만 타이페이시(台湾台北市)의 용산도장(龍山道場) 오금룡(呉金龍) 사범의 소개로 윤 사범의 도장이 참가하여 연무를 했습니다.
 이 상황은 2007년 9월 12일의 블로그에 써있습니다. 읽지 않은 분은 읽어봐 주십시오.

2007年9月12日のブログへ 2007년 9월 12일의 블로그로

  사진 : 북한과의 국경 근처

  제가 지금까지 한국에 갈 때에는 매번 15명~20명의 학생들이 함께 갔기 때문에, 저도 윤 사범도 여러가지로 바빠서, 제대로 대화할 시간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번의 참가는 3명이었기에 윤 사범과 부인과 느긋하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윤 사범의 부인의 일본어가 현격히 능숙해져 일상회화에는 부자유스럽지 않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관광이나 호텔에서 도장까지의 이동, 식사 중에 윤 사범의 合気道 보급발전의 고생담이나 한국인의 무도에 대한 생각이 일본인과 상당히 다른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의 대부분의 무도인은 30세를 넘어 체력이 떨어지게 되면, 지도는 제자에게 맡기고 경영자가 된다고 합니다. 사람을 모으는 것과 단`급의 발행으로 경영에 철저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전문도장을 열 때, 1주일 간, 매일 몇 번이고 수련시간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수련하러 오는 사람이 납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도전문의 도장에서도 매일 몇 번이고 수련시간이 있는 것은, 상당히 큰 도시의 중심에 있는 도장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 교외의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에서도 전문도장은 주 3~4회. 하루에 한 번의 수련을 윤 사범은 한국에서는 믿지 못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진 : 윤 사범 내외와 성 지도원

  윤 사범의 대단함은 자신이 한국무도계에서 나름의 지위와 명예를 구축한 것을 모두 버리고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의 내제자 수련(住み込み修業)에 쳐들어 온 것입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제로(0)부터의 출발입니다.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 지도부는 윤 사범을 전면적으로 응원했습니다. 지도원의 파견, 윤 사범, 제자들의 고바야시 도장의 내제자 수련의 허가, 이와이 합숙(岩井合宿) 참가를 위한 경제적 원조 역시 가능한한 지원했습니다.

 윤 사범은 당시, 한국무도의 실력자였기에, 몇 주 정도 아이키도 수련을 하면 간단히 어느 정도의 기술은 습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윤 사범의 지금까지 배운 무술에서는 기술은 물론입니다만, 체력, 기력, 힘 그리고 스피드에서 상대를 압도해 왔습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아이키도의 기술을 하겠다고 하면, 전혀, 기술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키도의 몸놀림이나 기술은 보면 간단히 가능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용을 쓰면 용을 쓸수록 아이키도의 기술은 향상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체험한 무도와 아이키도는 이질적인 것임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키도의 기술의 어려움 및 기술의 다양함에 머리를 감싸쥐었다고 합니다.

 사진 : 북한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일본제 기관차

  노력의 결과, 아이키도 초단을 취득하여 대한합기도회의 제1보를 내딛었습니다. 윤 사범이 한국의 합기도에서 일본의 아이키도로 전향한 것은 앞에서도 썼습니다. 윤 사범이 조직하고 있던 삼산무술연합회(三山武術連合会)는 붕괴, 분열되어 버렸습니다. 아주 약간의 도장만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윤 씨의 부인은 그때까지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였으나, 일본의 아이키도로 전향하고부터, 정말로 경제적으로 곤란해져, 3년 동안은 예전의 삼산무술연합회로 돌아가자고 계속 말했습니다. 2명의 자식을 포함 경제적으로 쫓겨, 별장이나 집을 팔게 되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윤 사범의 결의가 단단했기에, 별 수 없이 자신도 아이키도의 수련을 시작하고서야 아이키도의 좋은 점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이 몇 년이고 대한합기도회의 사람들을 위해 지도원 파견 및 이와이 합숙의 참가에 '결연기금(むすび基金)에 의한 경제원조가 얼마나 대한합기도회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며 마음 속 깊이 감사를 표해주었습니다.


 무도의 평가는 실력보다도 단위로 결정되는 일이 세간에서는 일반적입니다. 윤 사범은 한국의 합기도에서는 6단이었으나 일본의 아이키도에서는 초단부터 스타트입니다. 한국의 합기도의 도장의 선생은 5단, 6단의 선생이 당연한 식입니다. 일본의 아이키도는 다르다고 말해도 초단의 윤 사범의 도장에서는 학생이 그리 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윤 사범의 노력으로 아이키도의 회원은 조금씩 늘어 3년, 5년이 지나 윤 사범도 승단하여 일본의 아이키도가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세계에서도 똑같지만 흉내내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는 일본에서 아이키도를 배워 XX단을 취득했다. 내 쪽이 실력, 기술이 낫고, 진짜 아이키도다, 윤 사범의 아이키도는 가짜다'고 한국인들 사이에 말하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에서는 윤 사범의 대한합기도회를 아이키카이(合気会)의 승인단체로서 승인토록 하고, 또한 국제합기도연맹(国際合気道連盟)에 한국의 단체로서 가입하여 대처하였습니다.
 현재는 그러한 사람들은 어딘가 사라져버린 듯 합니다. 또 하나는 인터넷 상에서의 중상비방입니다. 이에 대해 윤 사범은 하나하나 회답, 반론하여 조용히 만들었습니다.

 윤 사범은 자신을 갖고 '현재는 대한합기도회에는 일절 걱정이나 문제가 없습니다.''선생님, 20년 걸렸습니다만, 한국무도계에 아이키도는 일본인인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植芝盛平翁先生)이 창시한 무도임을 인식시켰습니다.'하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합기도의 도장이 '대한합기도회의 산하에 들어가고 싶다'든가 '협력하여 활동하고 싶다'며 머리를 숙이고 온다고 하지만, 신중하게 대처하는 듯 합니다. 분명 '현재의 합기도의 단을 인정해달라'든가, '내가 회장이고 윤 사범은 부회장' 등의 어리석은 말을 하는 듯 합니다만, 그에 대해 일체 타협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있다며 힘 있게 말했습니다.
 
 대한합기도회와 아이키도 고바야시 도장의 강한 연대를 이번 방문에서 저는 느꼈습니다. 그것은, 이 강습회 기념 티셔츠에 나타나 있습니다. 기념 파티에서 전원이 입어주었습니다.

이 티셔츠를 보시면서 블로그를 마무리합니다. 다음 번에, 한국에 제가 수련을 갈 때에 꼭 모두들 참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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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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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상진

    성주환지도원님 수고많으셨습니다 . 성주환지도원님 노고가 돋보이는 자리였습니다 .
    한증막같은 비좁은 자리였지만 아이키도 도우들이 이렇게 많은데다가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님의
    지도를 조금이나마 맛볼수있는 자리가 좋았습니다 .

    2010/09/25 22:39
  2. 나덕현

    둘째날 점심식사시간 이후 쏟아진 폭우로 인해, 윤선생님께서 제게 "우산을 들고 길가로 나가 고바야시 선생님을 기다렸으면 좋겠는데"라고 하셨습니다. YMCA 건물 앞에서 도복을 입은채 우산을 받쳐들고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내가 아이키도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선생을 모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감사하더군요...
    그저..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항상 건강하고 기분 좋은 웃음으로 뵐 수 있기를...

    2010/09/26 23:04
  3. 문영찬

    점점 파워블로거가 되고 있는듯한 느낌이..
    난 동네 찌라시..-.-..

    ㅋㅋ

    2010/09/27 15:50
  4. 이준현

    지금까지 남긴 글로 충분히 현행법에 의해 모욕죄에 해당하고 더이상의 악플과 인식공격시 법적대응을 할수 있으니 이제 그만하셈 .. IP전부 추적들어가서 엄한 주위사람들에게 피해입히고 망신당하지 말고 이제 그만하셈

    2010/09/28 11:02
  5. 백경민

    사진으로 뵈니 관장님 연세가 느껴지는구나
    하긴 처음 뵐 때 30대셨느데 이제 50대가 되셨으니..
    주환 오랜만일세~

    2010/09/30 20:01
    • aikidokr

      와앙~ 형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2010/09/30 23:15
  6. ha y choe

    respect of frontier

    2010/10/02 02:25
  7. 이태우

    김도형씨 조만간에 오프라인에 강제 출두하시겠네요.
    부디 그 실제 모습은 인터넷에서만큼 당당하시길 바랍니다.
    멋진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2010/10/03 01:02
  8. 배성우

    오랜만에 주환씨 블로그에 글을 남겨보네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불과 2년전에 갑작스런 척추부상으로 내 평생 마음의 동반자였던 아이키도와 이별을 했습니다.
    저 한참 윗쪽에 글 쓰신 분 글을 보고 저도 모르게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 누구하나 먼지 털면 안나오는 분 없고, 순도 100% 깨끗한 사람은 없습니다.
    뭔가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마음에 들건 안들건 그래도 한 땐 그분 및에서 세상사 시끄러운 일 한순간 접고, 땀흘리며 즐겁게 수련했던 기억이 있을겁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몸이 노동과 운동의 피로누적으로 약간의 골절성 만성척추질환이 생겨버렸지만, 저는 누구를 지칭하며 탓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제 스스로 수련이 좋아서 몸이 만성피로가 되어도 아이키도를 수련하지 않으면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결국 그 좋아하던 수련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때의 추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서울에서의 각종 연무회 참가, 제가 있던 지방도장, 회원들과의 뒷풀이 그리고 여러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회원분들 모든게 하나의 추억이 되어 지금도 그립기만 합니다.
    아, 언제금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모르겠네요. 지금은 몸만 다시 건강해진다면, 무슨 일을 해도 즐거울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모두들 즐겁게 수련하시고, 행복한 인생이 되길 빌겠습니다.^^

    2010/12/12 22:34
Trial & Error/20092009/04/25 18:03

It was last Thursday morning that I got a call of demotion, and also the 2nd day of family-trip to Jeju-Do island. After the call, it began raining out of nowhere.

제주도에서의 가족 여행 2일째인 목요일, 좌천당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갑자기 비가 내렸다.

After bringing mom, wife, and daughter to the dolphin show, still was I waiting for the next call from the boss in a car avoiding rain. He told me a guy made a problem in the other station was demoted to get my position, and I should move to somewhere else. A domino game.

어머니와 아내, 딸을 돌고래쇼장에 들여보낸 후, 여전히 나는 차 속에서 비를 피하며 상사로부터의 다음 전화를 기다렸다. 타 경찰서의 사람이 문제를 일으켜서 우리 서로 좌천되어 내 자리로 오게 되었고, 나는 그 밑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 도미노 게임.

What should I do then? I became another person without my own decision. I was in an island and there's nothing I could do against the demotion. I've been a cop for 10 years now, and I've experienced this kind of ground-sinking personnel shifts. My wife already felt something went wrong and gave me a hug saying nothing. I needed something to prove that I was who I was to myself. I went to the Jeju dojo.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내 의사가 배제된 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섬에 있고, 좌천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10년 간의 경찰 생활 동안, 이런 식의 갑작스런 인사이동에는 이골이 나있었다. 아내는 이미 뭔가 잘못 되었다는 걸 느꼈는지 아무 말 없이 날 안아주었다. 난 그저 내가 여전히 나 자신임을 증명할 수 있을 뭔가가 필요했다. 난 제주 도장으로 향했다.



Jeju-Do was my first place of installment as a police officer. I've served as a leader of a coastal deffense garrison. At the time, I should admit, I didn't have any good memory back then. I was too young to be a good leader, and a classmate installed with me there was killed by a bike accident on patrol. I was the first one who arrived and identified him at the hospital. A year later, I told to myself that I will never come back to this terrible island.

제주도는 내가 경찰로서 첫 발을 딛은 곳이다. 해안경비대의 대장으로서 근무했다. 당시에, 고백하자면, 난 아무런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좋은 리더가 되기에는 너무 어렸고,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동기는 순찰 중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병원에 처음 도착해서 신원확인을 해준 사람이 바로 나였다. 1년 후, 난 이 섬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Not long later, a group of new volunteers including Jeju people began to visit the KAF hombu dojo in Seoul to enter the new world. And I was the one under a secret order of maintaining 'discipline' to thin out 'the wrong ones'. It continued for about a year. Some of them gave up, some of them remained. Jeju guys, their number rather increased. They weren't 'the wrong ones'. With years, we became friends, waving hands even seeing each other at a long distance. I  attended their seminar in Jeju-Do in 2005. It's been 5 years since my last depature from the island. Jeju-Do is not where I'd used to grumble anymore.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의 대한합기도회 본부도장에 새로운 세계를 찾은 지원자들이 방문했다. 제주 사람들도 함께 였다. 그리고 나는 '쭉정이'를 솎아내라는 밀명을 받은 소위 군기반장이었다. 1년 정도 지속되는 과정에서, 몇 명은 포기하고, 몇 명을 남았다. 제주 사람들의 숫자는 오히려 늘어있었다. 그들은 '쭉정이'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은 벗이 되어 멀리서도 반가워 손을 흔드는 사이가 되었다. 2005년 나는 제주도에서의 세미나에 참가했다. 그 섬을 떠난지 5년 만의 일이었다. 제주도는 더이상 내가 투덜대던 그곳이 아니었다.


With welcome of Jeju practitioners and after 1&1/2 hours of training in the Jeju dojo, I felt better. No, I began to 'forget' about the demotion. Now I knew it's friends that are much more worth than the 'cover'. I am still me in the dojo, I smile, they smile, then what matters? I am not that childish as 10 years ago, anyway.

제주 수련생들의 환영과 제주도장에서의 1시간 반의 수련이 끝나고, 난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아니, 좌천에 대해서는 아예 '잊기' 시작했다. 난 이제 '겉모습'보다는 친구들이 훨씬 소중하다는 걸 안다. 도장에서는 난 여전히 나이고, 내가 웃고 그들이 웃는데, 뭐가 더 필요할까? 어쨌거나, 나도 10년 전만큼 어리진 않다.


Next friday afternoon my family went back but I remained to welcome new visitiors-Yoon senseis from Seoul and Ishibashi senseis from Fureai-Juku, Japan-. The 1st international seminar in Jeju-Do was to be held on the next Saturday and Sunday at the Taekwondo dojo of Halla college, as a interpreter, there's no time to think other things.

다음날 금요일 오후 가족들은 돌아갔지만, 나는 남아서 서울의 윤대현 관장님과 일본 후레아이숙의 이시바시 선생님 일행을 맞이했다. 제주도에서의 첫 번째 국제 세미나가 다음날 토요일과 일요일, 한라대학 태권도 실습실에서 열릴 예정이었고, 통역으로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We visited the Jeju Peace Museum(http://www.peacemuseum.co.kr/) where was previously a tunnel made by Jeju people under Japanese military during WW2. Tears shed out suddenly coming out of the tunnel. Wars' been always very silly one through history but we can still see people somewhere cry with them. The curator had us write our feelings down on a white canvas. I could find SUGAWARA Tetsutaka sensei's writing there. He wrote down last year, 'Budo should be used for peace'. He gave his whole money in the pocket as contribution. You can see it here( http://www.peacemuseum.co.kr/board/view.php?id=photo5&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77 ) Our wirings would be updated soon there, too. Ishibashi sensei wrote;'Peace is a world treasure'., while Yoon sensei wrote;'Peace=Aikido'.

제주 평화박물관(http://www.peacemuseum.co.kr/)을 방문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제주 사람들이 만든 군용 터널. 터널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쟁이란 건 역사 속에서 항상 어리석은 것이었고, 피해자는 항상 민초였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이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박물관장이 흰 캔버스 위에 감상을 적도록 권했다. 거기서 스가와라 선생이 쓴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작년 방문에서 그는 '평화를 위해 무도를 사용합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갖고 있던 돈 모두를 기부했다. 여기서 그 사진을 볼 수 있다. ( http://www.peacemuseum.co.kr/board/view.php?id=photo5&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77 ) 우리가 쓴 것도 곧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이시바시 선생은 '평화는 세계의 보물'이라 썼고, 윤대현 관장은 '평화=아이키도'라고 썼다.

The late YAMAGUCHI Seigo shihan, Ishibashi sensei's master, used to tell '稽古は真剣に、気は充実して、でも顔はニコニコして(A sincere training filled with Ki, but with a smiling face)', I was told. With Aikido, training together, we Koreans and Japanese could be harmonized over history and nationality as O-sensei's saying 'the golden bridge connecting continents'. Aikido is for harmony.

이시바시 선생의 스승인 故 야마구치 세이고 사범은 '수련은 진지하게, 기는 충실하게, 하지만 얼굴은 웃으면서'라고 줄곧 말했다고 한다. 아이키도를 함께 수련하면서 우리 한국인과 일본인은 역사와 국적을 넘어 화합할 수 있었다. 큰선생이 말한 '대륙을 연결하는 금각교'처럼, 아이키도는 평화를 위한 것이다.


Dojochoes and practitioners in Jeju headed by the manager MOON Young-chan did their best to show their hospitality and the growth of Aikido in the island. Eveyone smiled.

문영찬 지부장을 비롯한 제주도의 도장장들과 수련생들은 그들의 호의와 제주도에서의 아이키도의 성장을 보이는데 최선을 다했다. 모두들 웃고 있었다.




In the office at 6 am on Tuesday, my usual time for self-practise, I set a new desk. I decided to be unconcerned about the deomtion, and give the new boss a smile. But he's not shown himself.

화요일 새벽 6시, 보통 내 개인 수련이 시작되는 시간이지만, 사무실에서 나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좌천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새로운 상사가 될 사람에게 웃어주기로.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In the evening I got the notice of return to the original position. The guy, who was to be in my position, got a notice of discharge. It ended as an happening. Colleagues cheered me up and complained about the unreasonable personnel affair, I was calm strangely. That affair lasted for a week but I felt it as just one day. Because I'd been with friends, senseis, a family in the place where I feel most comfortable the other days. I just give my sincere thanks to them.

그날 저녁 나는 원위치로 복귀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내 자리로 오기로 했던 사람은 해임 통지를 받았다. 해프닝으로 끝나버렸다. 동료들은 나를 격려하고 비이성적인 인사에 대해 불평했지만, 이상하게도 난 평온했다. 이 일은 1주일에 걸쳐 일어난 일이지만, 내가 체감한 것은 단 하루다. 왜냐 하면 난 그동안 내가 가장 편하게 느끼는 장소에서 친구들, 선생님들, 가족들과 함께 있었기에. 그들에게 진정 감사한다.

I'm still me.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난 여전히 나인 걸. 케 세라 세라, 될 데로 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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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묘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주에서의 감동이 다시금 새록새록 다가오네요...ㅎㅎㅎ

    2009/04/27 10:47
  2. 문영찬

    역쉬!! 성주환은 성주환이다..!! 될 데로 되라고하니 역쉬 되는군..^^
    고마웠어요..성주환 지도원님!!!

    2009/04/27 20:38
  3. 김문수

    참으로 어린 나이에 동기의 죽음은 충격적인 일이지요!

    그렇게 절망을 안겨준 제주를.. 다시 희망과 즐거움의 대상으로 상황이 전환되었네요?

    세상일은 역시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일이 숱하게 많죠!!..

    2009/04/29 01:28
  4. 주환씨 고민거리가 잘 해결됬다니 다행이군요....
    힘내세요...^^

    2009/04/30 17:12
  5. maiko

    what a treatment! that was so unreasonable and unfair... ya, you should come back to timor! (hehehe, is it only me who is saying this still?) :-p
    other than this failed attempt of demotion, how are things over there?
    it's slowly getting into dry season here... (and yes, i am still a resident of this tower.) ;-)

    2009/05/01 13:03
    • aikidokr

      Oops, I was thinking of you just a minute ago. It's getting into dry season there? You must go to scuba-dive! I'm fine anyway, and going to picnic tommorrow. I've shot some of bloomed sakuras weeks ago for you, but yet sent to you. I'll do it right now.:)

      2009/05/01 19:59
  6. 이태우

    선배님 삶의 스펙트럼이 강렬하고 진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09/05/04 07:38
  7. 김병수

    형님.
    홧팅입니다.

    2009/05/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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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gawara sensei looks good in silvery hair.

Youn sensei looks good in a mustache.


* 일시 및 장소: 2008. 11. 15~16, 서울 보성중학교 유도장
* When & where: 15/11/08~16/11/08, Judo gym in Boseong Junior High, Seoul.

스가와라 테츠타가 선생 프로필:
아이키도 7단(큰선생의 내제자), 텐신쇼덴 카토리신토류 교사, 태극권 및 고주류(강유류) 가라데 교사. 스가와라 종합무도 연구소장. 사이토 모리히로 선생의 첫 아이키도 교범 'Traditional Aikido' 출판인.

SUGAWARA Tetsutaka sensei's profile:
Aikido 7th dan(an uchideshi under O-sensei), Kyoshi in Tenshin Shoden Katori Shintoryu, an exponent of Taichi and Gojyu-ryu Karate. Chief of Sugawara Martial Atrs Institute. A publisher of the Traditional Aikido by the late SAITO Morihiro sensei.

  화려한 프로필을 제쳐두고서도 스가와라 선생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무술에 대한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주의 세미나중에(카토리신토류 세미나는 다음주), 그는 '실전용' 과 '건강용 또는 수련용' 기법을 엄밀히 구분했다. 나로서는, 직업상 아주 관심있게 볼 수 있었고, 좋은 공부가 되었다. 아이키도 계에서는, 크게 '강한 스타일'과 '부드러운 스타일'로 양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자의 대부분이 '그들의' 아이키도를 '실전에 효과적''거리에서 효과적'이라 표현할 때, 후자는 '진정한','기에 기초한' 등으로 말하곤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왜?'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하는 듯 하다.

More than his highlighted profile, you will notiice what makes Sugawara sensei special is his approach to MA. During seminar this week(TSKS seminar will be held next week), he made a clear distinction between 'wazas for real' and 'wazas for health or practise'. For me, I like it because of my profession. In Aikido world, you can see mostly 2 groups, 'Hard style Aikido' and 'Soft style Aikido'. And most of the fomer calls 'their' Aikido as 'COMBAT EFFECTIVE','STREET EFFECTIVE', on the contrary most of the later does it as 'AUTHENTIC','KI based', blah blah blah. But not small numbers of them doesn't seem to be able to explain 'WHY SO?'.

무도가이자 연구가로서의 스가와라 선생의 무도에 대한 넓은 지식과 깊은 통찰력은 이에 대한 균형을 잡고 '왜 그런지'에 대해 설명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동화 속에 사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왜' 이런 저런 걸 하는지 알아야만 한다.

Sugawara sensei's broad knoweldge and deep insight in MA as a researcher and budoka can make a balance and explain it. This is very important for preventing those who are living out there with fairy tales. You have to know WHY we are doing this and that.

특히 그의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난 정말 좋아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그는 어떻게 '제3의 눈' 또는 '심안'으로 보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사실 이것은 그저 다른 무술에서도 볼 수 있는 시선처리기법을 다른 방식으로 성명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도하는 자세의 의미, 세계 각지의 고대 유물에서 볼 수 있는 '눈 마크'의 기원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이다.

Especially his cultural anthropolgy approach on MA I love. For example, this time he explains 'how to see' with the '3rd eye' or 'eye of spirit'. Actually it can be just another varied explanation of me-tsuke in other MAs. But his explanation goes further to the meaning of a prayer pose, and the origin of the eye mark you can find in ancient remains over the world.

또한 무술가로서 그는 정말 깨끗한 동작을 보여주는데, 어떻게 움직이는지 간파할 수가 없다. 그는 항상 '상대에게 집중할 것''불필요한 움직임을 제거할 것'을 강조한다.

Still as a martial artist he shows very clean movements. You can't sense how he moves. He always emphasizes 'concentration onto your partner' and 'cut away unnecessary moves'.

선생이 조아이와 쿠미조, 체술과 코가주츠(미국의 로버트 코가 선생이 아이키도를 기본으로 창안한 유명한 체포술)을 지도하시는 동안, 나는 그의 뒤에서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었다.(이건 통역자로서의 아주 큰 메리트다.) 그가 너무도 안정되고 매끄럽고 가볍게 여기저기로 '순간이동'을 하는 걸 보면 감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While he was teaching Jo-ai and Kumi-jo, Taijutsu and Kogajutsu(very famous Aikido-based arresting method found by Robert Koga in the U.S.), I kept watching him very closely from behind(this is an extreme advantage as a interpreter. ). You will be suprised by how he 'teleports' around in a so steady, smoothe and light manner.


스가와라 선생과 관장님의 가르침에 늘 감사하며.

In deep appreciation of the teaching by Sugawara sensei and Youn sen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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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08/11/20 02:12
  2. 이태우

    본부에서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이태우입니다.
    선배님^^
    한 해 내내 감사한 일 밖에 없는 2009년 되시길 바랍니다!

    2009/01/1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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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퀴퀴한 냄새야?'
코를 찡그리며 퀴퀴한 냄새의 진원지를 찾던 아내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베란다에 걸려있는 하카마. 땀을 많이 흘리는지라 도복이야 항상 세탁한다지만, 하카마는 말리기만 하는 편인데, 빨고 나서 주름을 다시 잡는 게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하카마는 빠는 게 아니다'는 히로아키 선생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라는 좋은 핑계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로서도 거역할 수 없을 퀴퀴함이라 고개를 푹 숙이며 세탁기로. 불행 중 다행인지 지금 가진 Xebec제 하카마는 100% 폴리에스테르라서 세탁기에 넣어도 주름 걱정 없어서 안심.

'What's this stench?'
Wife's eyes, frowning with the bad smell, serched its origin and stopped. The hakama hung on the porch. I always keep dougis clean, but I only keep the hakama dry. It's not only because it's so difficult to iron the skirt, but also I keep a lesson from Hiroaki sensei,'Don't wash your hakama'.. But this time, the overwhelming stench forced even me to take it to the machine. Out of the luck, the current Xebec hakama of mine is of 100% polyester, it's fine with machine-laundry.

야마시마 타케시 7단 선생을 비롯한 치요다구합기회와의 수련이 끝났다. 야마시마 선생은 65세, 故야마구치 세이고 선생의 제자이자, 신카게류 검술의 면허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2년전 이시바시 선생의 후레아이숙과 치요다구합기회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맺어진 인연은 윤익암(윤대현) 관장님의 치요다구합기회 주최 카시마 합숙으로, 다시 야마시마 선생의 한국방문으로 이어졌다.
The training with Takeshi Yamashima sensei(7th dan) and Chiyiodaku Aikikai is over. Yamashima sensei, 65 years old, is a student of the late Seigo Yamaguchi sensei, and he has a menkyo of ShinKage-ryu. The friendship firstly made by the vist of Ishibasi sensei's Fureai-juku and Chiyodaku Aikikai continued to Yoon sensei's visit to Kashima gasshuku, and returned by Yamashima sensei's vi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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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
'One seeing is better than 100 times of asking, and One doing is better than 100 times of seeing.'

작은 키의 약간 풍채좋은 할아버지의 외양은 故야마구치 선생의 샤프한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표현하는 기술들은 그 스승의 것을 충실히 전하고 있음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수련 후 회식자리에서도 故야마구치 선생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이시는 모습에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Yamashima sensei's look as an ordinary old man with short height is not like the sharpness of the late Yamaguchi sensei, but you can see at once that he hands down what he learnt from his master.(At the party after the training, I could see his endless respect to Yamaguchi sensei when I talked of him.)

'유능제강'이란 말은 무도계에서 일반화되다시피 하였고, '유'에 대한 언어적 정의와 몸으로의 표현도 제각각이겠지만, 야마시마 선생의 기술을 받아본 느낌은 그야말로 부드러운 젤리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듯한 것이었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은 '내 공격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듯 했다'고 하였다. '몸에 닿는 순간 튕겨나가는', 혹자는 영화나 만화의 것으로만 여길 기술들을 직접 받아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말씀이 나직하면서도 어찌나 빠르고 긴지 통역하기가 아주 까다로웠지만, 내용의 요지는 언제나 '허리(중심)의 콘트롤'.

The term 'the Softness can overcome the hardness' is heard everywhere in MA world, and everyone has its verbal definitions and bodily expressions, but I felt Yamashima sensei's techiniques like I was 'fallen in jelly and struglling to get out of it'. Another participant felt it like 'his attack itself has vanished'. I also felt lucky to feel 'the Bounce back as soon as you touch', which was thought that it's only in movies or manga. He spoke very silently but quick and long, made me very hard to interpret, but he always emphasized 'the control from your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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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씨와(with Aigo-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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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씨와(with Kohno-san)


2년만에 만난 치요다구 합기회 회원들도 반가웠는데, 특히 아이고 씨와 고노 씨에게서 많은 조언을 얻어 그간 생각해오던 것들을 좀 더 실체화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이 계속 되길 바란다.
Very glad to see the students of Chiyodaku Aikikai in 2 years, especially I got many hints from Aigo-san and Kohno-san, very helpful for substantialization of what I was seeking. I really hope we can seek the path longer together.

* * *
후기를 쓸 때마다 최대한 객관적인 어휘를 사용하려고 해도 자신의 경험한 선생의 기술을 표현하는데 주관적인 어휘가 사용될 수 밖에 없어 곤란할 때가 있다. '드래곤볼'의 스카우터가 실제로 있다면야 상당히 편하겠지만.
Everytime I report, It's very hard to have it 'objectified' that I experienced. I really need a 'scouter' in 'Dragon-Ball'.

결론; 역시나 '마인 부'였고, '부드럽게 날 죽였다'.(<-사실 이번 후기는 이 한 문장만 쓰고 말려고 했음.)
Conclusion; Yup, he was 'Majin Boo', 'killing me softly'.( <- Frankly, this was the only sentence that I wanted to say.)
* * *
언제나 제자들을 위해주시는 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I give Yoon sensei my deepest respect and appreciation for his love to students.
* * *
세미나 동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음. -> http://blog.daum.net/oskorea
You can find the seminar clip here. -> http://blog.daum.net/o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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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08/07/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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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160cm 전후의 키에, 55세, 암 수술로 인해 위를 적출해서 1년 만에 20kg이 빠져버린 남자.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키도를 통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살아있다'.

그는 바로 카나야 히로타카 6단 선생이며 일본 아오모리에 위치한 이파이모리 도장의 도장장이다.(http://www.hi-net.ne.jp/~ipaimori/) 선생은 꼭 2년 전에 대한합기도회를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아무런 고지 없이 방문했다고 한다. 앤드류는 '두꺼운 팔뚝과 힘을 뺀 손을 가진 왜소한 중년의 남자였지만, 몸놀림만으로도 그가 아주 숙련된 유단자임을 알 수 있었다'고 이메일로 전해왔으며, 루퍼트 선생의 도움으로 그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또한 놀랍게도 그의 암 수술 및 위장 적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가 종전처럼 아무런 고지 없이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살이 너무 빠져서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그저 대한합기도회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고 싶어서 비행기를 탔을 뿐이라고 했단다. 이 선생을 정말 만나고 싶었음에도 기회가 닿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었다. 도대체 어떤 괴짜이길래.
확대

마침내 지난 주말(2008/05/03-04) 서울 신설동 중앙도장 개관을 기념하여 열린 특별 수련에서 나는 그의 우케를 할 기회를 얻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그는 왜소한 중년으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완된 에너지는 너무나 근사함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그저 기술만이 아니라, '어떻게 그가 이렇게 생기(生氣)가 넘치는가?'였다.

지금까지 만나온 모든 선생들은 내게 감동을 전해주셨다. 카나야 선생은 그의 존재로서 인간의 무한함을 보여주셨다. 신체적 장애를 갖고서도, 그는 나를 마치 장난감 다루듯 했다. 맞다, 내가 만난 모든 선생들이 나를 장난감 다루듯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 위장도 없는 조그만 아저씨가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선생은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큰 내 체격을 보고 몇 번이나 농담을 하였다. 그는 언제나 웃음을 머금으며 농담을 던졌다.

감동에 거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의 움직임과 말 하나 하나가 그가 자신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극복했음을 보여주었다.

'저는 여기 여러분들을 가르치러 온 게 아닙니다. 윤 선생은 한국 최고의 아이키도가이며 일본의 선생들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레벨의 선생이십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이기려고 온 게 아닙니다. 만일 저를 이기려 마음먹으신다면, 저는 질 겁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수련하러, 여러분들과 함께 하러 왔습니다. 저는 전세계의 아이키도인들을 만나고 느끼길 좋아합니다.'

그와의 수련은 정말 훌륭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선생을 만나고 느낄 수 있었던 것에 정말 행복하고 행운이라 생각한다. 선생은 이번 가을에 또 대한합기도회를 방문하실 예정이다. 선생의 '살아있음'을 꼭 느껴보길 바란다.

p.s. 선생이 해주신 재미있는 얘기 중 하나. 선생이 고교생 시절 처음으로 본부도장을 방문하였을 때 2대 도주 기쇼마루 선생의 양팔을 잡고 다짜고짜 발차기를 날리는 순간 던져졌는데, 아직도 어떤 기술인지 알 수 없다고. 그리고 즉시 카나야 선생의 양팔꿈치는 내제자들에 의해 부러졌다고.

* * *
Here's a person. About 160cm tall, 55 years old, and had a extracted stomach because of a cancer surgery, so that had lost 20kg within a year. But he is still 'ALIVE' not only physically but also mentally through Aikido.

He is KANAYA Hirotaka sensei, 6th dan from Ipaimori dojo in Aomori, Japan.(http://www.hi-net.ne.jp/~ipaimori/) He firstly visited KAF exactly 2 years ago without any notice of his identity which was soon to be unveiled. Andrew sent me an e-mail on his visit saying 'he was an small middle-aged man with thick forearms and relaxed hands, and looking his movement it was obvious he was a high-skilled yudansha, a black belt', so he searched and found his real identity with help of Rupert sensei.

But I haven't had an opportunity to meet him until this time. And suprisingly I was told he had got a surgery and had his stomach extracted. At his second visit with no notice as before, no one could tell it was him because of his tremendous loss of weight. He told that he just took a flight because he suddenly wanted to see and practise with us KAF. I was so eager to see him but always missed the chances. What a character he is.

Finally I served as his uke during last weekend special classes with celebration on the opening of the new KAF dojo in Sinseol-dong, Seoul. As I've mentioned above he looked as an tiny middle aged man. But his relaxed energy was so great, I could 'feel' it. It was not just a skill that surprised me, it was 'How he is so ALIVE?'.

Evrery sensei I've met has moved my heart with their technniques. Kanaya sensei showed me the no-limit of human-being with his presence. Physically handicapped, he played me like a toy. Yes, every sensei I've met have had played me like that. But how could this old man with no stomach do that? He joked serveral times with my physique relatively much bigger than him and had fun of me. He always smiled and joked.

I was almost moved to tears. All of his movement and saying showed that he accepted and overcame all he'd got.

'I am not here to teach you. Youn sensei is No.1 Aikidoka in Korea and also a very high-level sensei even comparing senseis in Japan. I am not here to win you all. If you want to win me, no problem, I will be lost. I am here to practice with you, to be with you. I just love to meet and feel Aikidokas all around the world.'

The practice with him was so beautiful experience, I feel so happy and lucky to have met and felt him. He is planning to visit KAF again this fall to be with us. You must feel he is ALIVE.

p.s. A story out of serveral funny stories of his own he told me. When he visited Hombu dojo for the first time as a high school student alone, he tried to kick Kisshomaru sensei, the 2nd Doshu grabbing his both arms without any notice during the class, and was thrown by a technique which he still doesn't know. And his both elbows were broken by angry uchideshies right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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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the new do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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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현상

    저도 두번째 방문때 신촌도장에서 지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암으로 인하여 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수련 후 관장님을 통하여 알게 되었죠. 만약 관장님이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그분이 환자라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겁니다. 이번에 다시 한번 지도를 받고 싶었으나 아쉬게도 수련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가을지도때는 다시 한번 선생의 기술 느끼고 싶습니다.

    2008/05/07 08:50
  2. 김용세

    금요일 저녁,
    윤관장님의 부재로 인해 제가 수련 지도를 청했으나,
    나는 배우러 온 것이지, 지도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라며 지도를 망설이셨습니다.
    지도가 시작되면서,
    왜소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호흡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선생께서는
    당신의 꿈은 전 세계 도장을 다니면서 배워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병고를 겪으시면서 병을 치료한 것은 아이키도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훌륭한 지도자라고 말씀드렸더니,
    자신은 초보자이고, 평생 수련생일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늘 함께 수련하고 싶습니다.

    2008/05/07 11:28
  3. 이호석

    맞습니다. . . 진심으로 무언인가를 주시려는 마음이 느껴져 감동했습니다 / 장인어른 기일관계로 2, 3번째 수련에 참석못한것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

    2008/05/07 13:31
  4. 성주환님의 글만으로도 그감동이 전해지는 듯 합니다..
    어렵더라도 꼭 기회를 만들어 감동을 직접 느껴봐야 겠습니다..^^

    2008/05/07 13:54
  5. 김동환

    아~~~ 짐 장인어른과 술 한잔을 했습니다.
    아이키도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정말 선생님과 지도원님을 보면서 성찰하고 있습니다.

    요새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항상 아이키도 정신을 잃지 않을려고 합니다.
    선생님과 지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자... 힘내야 겠습니다.
    선생님....
    지도원님...
    감사합니다....

    2008/05/11 16:13
Trial & Error/20082008/03/0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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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어려운 수련을 통해서 터득해야 할 사실은
무술은 단순히 무술을 위한 무술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대해 굽히지 않고
봉사할 수 있는 부동의 일념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 2008년 3월 8일 5단 승단을 기념하며 윤익암

'Through long and hard training,
everyone should realize that the martial arts isn't just for the sake of martial techniques,
but that we should understand deeper and keep ourselves strong and robust in mind and body,
 devoting ourselves to our own beliefs.'

- March 8th 2008, YOON Ik-am
 
 
p.s. 화선지에 친필로 쓰여진 5단증 정말 멋졌음. 위 축하파티 사진 뒤쪽에 보면 관장님의 4단증과 5단증이 함께 걸려있는데, 그 품격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남.
p.s. Sensei's new 5th dan certificate looks so wonderful! You can see his old 4th dan certificate and the new 5th dan one on the wall in the party picture, and also can tell how different they are in its grace.

Posted by aiki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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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준현

    유익한 많은 말씀감사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2008/03/09 21:09
  2. 비밀댓글입니다

    2008/03/21 16:48